24일째로 접어든 반(反) 월가 시위가 9일 미 전역 25개 도시로 확산됐다. 하루가 다르게 세를 불리는 시위대의 성격에 대한 논란도 그만큼 가열되고 있다. 민권운동가와 좌파지식인 사이에서도 격려와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월가 시위대가 자리한 뉴욕시 맨해튼 주코티공원에 이날 슬로베니아 출신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카니발은 싸구려가 된다”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먼저 질타했다. 붉은 T셔츠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지젝은 “미국 자본가 사회에 감춰진 거짓을 탄로시켰다”고 시위를 평가한 뒤 “여러분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자기도취에 빠져 순수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다. 또 “좌파는 고된 노동, 규율, 질서준수 등을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며 보수에서 가족의 가치를 얻은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지젝은 시위대가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이번 시위를 지지한 소로스를 ‘변비를 일으키는 초콜릿의 설사약과 같은 좌파 금융가’‘수십억달러를 가져간 뒤 절반만 돌려주고 위대한 자선가가 된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마틴 루터킹 목사 이후 수십 년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앤드루 영은 “감정적인 외침과 운동은 차이가 있다”며 “지금 시위는 감정의 아우성”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문제는 조직과 메시지”라며 “효과적인 시위를 위해 진지한 토의와 리더십이 출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월가에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좌절감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변혁을 끌어낼 수 없다는 비판이다.
초기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나오미 클레인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정보시대에 너무 많은 운동이 꽃처럼 빨리 피었다가 사라진다”며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당부했다. 반 세계화 운동가인 그는 “뿌리가 없고, 장기 계획이 없는 게 이유”라며 “태풍이 밀려오면 이런 운동은 사라진다”고 적었다.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시위가 절제되고, 초점이 맞춰지고, 비폭력적인 방법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추후 득표력으로 변화될 것”이라며 월가 시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워싱턴= 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