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잇따른 납품업체 판매수수료 인하 요구 압박에 대형 백화점들이 정면 반발하고 나섰다.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동반성장 드라이브에 대기업들이 반기를 든 것은 처음이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빅3' 백화점 대표들이 이날 공정위의 판매수수료 인하안 제출 독촉에 아무런 언급도 없이 해외 출장을 떠났다. 백화점 측은 "(대표들의 출국이) 대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정부 요구에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공정위가 판매수수료를 문제 삼은 건 6월 말부터. 공정위는 당시 주요 백화점의 품목군별 판매수수료(20~30%)를 공개하면서 "과도하게 높은 수수료의 자율 인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달이 넘도록 업체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김동수 공정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6일 이철우(롯데), 박건현(신세계), 하병호(현대)를 비롯한 11개 대형 유통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판매수수료 3~7%포인트 인하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여일 후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인하안을 들고 공정위를 찾았으나, 공정위는 "합의정신에 미치지 못한다"며 퇴짜를 놓았다. 이후 양측의 대립은 본격화했다.
합의까지 한 사안에 대해 백화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위가 막무가내로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A백화점 관계자는 "공정위가 수수료 감면분을 영업이익의 10%로 하면 좋겠다고 제시했는데, 이는 절대 수용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못박았다. 영업이익의 10%면 롯데백화점은 800억원, 현대와 신세계는 각각 200억원에 달한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생발전을 이야기하니까, 공명심이 앞선 공정위가 나서서 백화점들이 1,000억원 넘는 돈을 내놨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겠느냐"고 힐난했다.
양측의 입장 차는 수수료 인하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공정위는 중소 납품업체 600여개의 판매수수료를 일괄 인하해 수천 만원씩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라는 의견을 전달한 반면, 백화점들은 "판매이익이 적은 영세업체는 적극 지원하되, 충분히 이익을 내거나 수입만 해서 파는 업체는 제외하는 등 지원 대상과 혜택을 자율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다 보니 비방전 수위도 높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간담회 때 자율적으로 인하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을 뿐인데, 마치 합의안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김 공정위원장이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사회주의도 아닌데 영업이익의 10%를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오히려 백화점 업체들"이라고 맞받아졌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만큼 수수료 인하결정이 순탄하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빅3 백화점 대표가 집단 출국한 것도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들은 15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15회 아ㆍ태 소비자업자대회 참석을 명분으로 출국하면서 인하안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백화점 관계자는 "과도하게 내놓으라는 공정위의 요구에 더는 응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위는 "백화점들의 대답을 좀더 기다려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론 백화점 업계의 불공정 행위를 샅샅이 조사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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