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노동자 월 80만원 벌어… 식비 60만원 쓰면 남는 돈 없어
대한민국 서울의 최미란(52)씨와 독일 베를린의 리아나(46)씨. 두 사람은 대학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다. 노동시간에도 별 차이가 없다. 최씨는 6시간씩 격주로 주5일과 주6일, 리아나씨는 7시간씩 주5일 근무를 한다. 공교롭게도 남편과 자녀 셋의 5인 가족이라는 점도 같다. 그러나 생활수준은 차이가 컸다. 선진국의 저임금 노동자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호소했지만,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생계유지가 어려울 만큼 임금과 복지가 최악이었다.
최씨의 한달 월급은 87만원.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빼고 나면 매달 80만원 정도가 수중에 들어온다. 5인 가족의 생활비 중 가장 비중이 큰 지출항목은 식료품비(60만원)다. 4분의1이 남은 월급은 공공요금(10만원), 교통비(6만원), 통신비(4만원) 등으로 쓴다.
그나마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자녀 셋(25ㆍ27ㆍ30세)이 모두 대학을 졸업해 부양을 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였다면 구청에서 상용직(무기계약직)으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 250만원을 합쳐도 생활이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들어간 등록금은 연 평균 3,600만원. 당시에는 최씨가 장사를 해서 월 300만~400만원을 충당했다. 막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따로 사교육비가 월 250만원이 들어 빚을 지기까지 했다.
베를린의 리아나씨가 받는 월급은 1,000유로(약 158만원ㆍ실수령액) 정도다. 그의 지출 중 가장 큰 것은 월세 600유로(약 95만원)다. 독일에선 월세를 내는 장기임대가 보편적이다. 최씨가 가장 큰 몫의 지출을 하고 나면 월급의 25%가 손에 남는 반면 리아나씨는 40%가 남는다.
더구나 그 나머지 씀씀이가 한국과 크게 다르다. 독일의 경우 한국인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교육비 부담이 없는데다, 정부로부터 적지않은 아동수당을 받기 때문이다. 리아나씨의 자녀는 12, 22, 29세. 그는 "아이 셋이 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학비는 거의 무료였고, 큰 아이가 20세가 될 때까지 다달이 한 명에 154유로(현재는 184유로로 인상)씩 462유로(약 72만원)의 아동수당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다보니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저축에 대한 압박도 적다.
리아나씨는 "남편이 버는 월급 1,200유로(약 190만원)와 합치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는다"며 "식료품비와 공공요금 등을 내고 난 뒤 남은 돈을 모아 2년에 한번씩 모국인 터키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1인당 국민총소득을 기준으로 한 최씨와 리아나씨의 임금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활수준은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비정규직, 저임금 직종으로 통하는 건설노동자도 '복지 선진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영국 런던의 한 공사현장에서 만난 존(24)씨는 5년 전 처음 공사현장에서 조경을 담당했던 때와 비교해 임금이 2배나 올랐다. 세후 1,000파운드(약 183만원)로 시작한 월급이 현재는 2,000파운드(약 365만원)다. 월수입 1,000파운드인 부인과 사는 존의 가장 큰 지출 항목도 집세였다. 월세 650파운드(약 118만원), 식비와 교통비로 400파운드씩 800파운드(약 146만원)를 쓰고, 매달 500파운드(약 91만원)를 저축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올가 바라키나(24ㆍ여)씨는 대학을 다니며 주말에만 6시간씩 청소노동자로 일하지만 한 달 평균 5,000크로나(약 87만원)를 받는다. 국민소득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높은 임금수준이다. 그는 소액의 생활비(약 10만원)를 내고 부모 집에 살면서 1,000~1,500크로나(약 17만~26만원)를 저축하기까지 한다.
일본 도쿄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일하는 간다 료(神田療ㆍ21)씨는 하루 6시간, 주 4일을 일하고 한 달에 12만6,400엔(약 194만원)을 받는다. 기본급(시급 1,050엔)에 교통비가 포함된 임금이다. 간다씨는 "가장 큰 지출인 월세 5만5,000엔(약 85만원)을 내고 나서 통신비, 식품비, 생필품비, 여가비 등을 부족하지 않게 쓸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더 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스톡홀름=이왕구기자 fab4@hk.co.kr
베를린ㆍ런던=김지은기자 luna@hk.co.kr
서울=정승임기자 choni@hk.co.kr
■ 기업이윤-가계소득 격차, 美·日의 2배 넘어
"너무 중요한 문제인데, 일반의 관심이나 인식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도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연구해 온 산업연구원 강두용 동향분석실장은 기자에게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최근 몇 년간 기업ㆍ가계간 소득격차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벌어진 것을 걱정하며 한 말이다.
한국은 지난해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기업 가처분소득(세후ㆍ배당후 순익기준)이 통계가 작성된 1975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주요국들은 7~10%를 오간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가장 최근 9%(2009년), 일본은 8.3%(2008년)였다. 한국은 2008년 15.4%, 2009년 17.7%에서 지난해 21.8%로 급격히 늘었다. 유독 한국에서만 기업 이윤이 증가해도 임금상승은 제자리걸음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임금을 억제해서 이윤을 높인 셈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은 살쪄도 국민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생활이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국제노동기구 자료에 따면 한국은 27개 선진국 중 2007~2009년 실질임금 감소폭이 가장 크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해도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임금이 가장 적은 국가로 꼽혔다. 국민총생산에서 근로자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해 59.2%로 60%선이 무너졌다.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70%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아서 일률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지만, 이것도 고용불안을 뜻하는 것이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강 실장은 "노동소득의 분배가 줄고 있다는 점은 최근 우리나라 경제 현안의 직간접적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내수부진, 가계부채 증가 등은 기업이윤이 임금으로 분배되지 않은 탓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비정규직, 법인세, 환율에서 기업 아닌 가계의 편에 서서 정책을 펴왔다면 국민의 복지에 대한 요구도 지금처럼 폭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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