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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자 토크 '나는 꼼수다' 신드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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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자 토크 '나는 꼼수다' 신드롬 왜?

입력
2011.10.0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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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의 언어로 권력 꼬집기…나꼼수, 정치예능판 '무한도전'

'나는 꼼수다' 열풍이 거세다. 팟캐스트 기반의 시사풍자 토크쇼 '나꼼수'는 지난 4월 말 '국내 유일 가카(각하) 헌정방송'이란 간판을 달고 첫 등장했다. 말 그대로 MB(이명박 대통령)와 그 주변세력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 주 내용이다. 초반 '변방의 북소리'에 그쳤던 '나꼼수'는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힘을 키우더니 보선 정국을 맞아 폭발적 반응을 불렀다. 급기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출연을 자청할 만큼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꼼수' 신드롬은 여러 곳에 뿌리를 대고 있다. 장삼이사의 입말로 거침없이 퍼붓는 권력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주는 쾌감, TV 예능 프로그램을 닮은 구성과 출연진들의 현란한 언어유희, 억압된 미디어환경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대안매체의 파괴력….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만든 제1동력은 패러디신문 '딴지일보'의 자칭 총수 김어준을 비롯해 출연진 4인방이 보여주는 한국 정치현실에 대한 구조주의적 독해력이다. 어떤 단편적(으로 보이는) 사건들도 하나의 궤로 일목요연하게 엮어내며 큰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정치 논평은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러면 그렇지" 같은 찬탄을 불러일으키며 듣는 이를 중독시키고 있다.

세련된 음모이론

'나꼼수'는 모든 정치적 사건을 이명박 대통령의 전지적 시점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이른바 '전지적 가카 시점'이다.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는 왕재산 간첩단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야권대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기획한 것으로, 그 목적은 '가카의 노후보장'에 있다는 식이다. 여기에 전직 국회의원 정봉주, 시사주간지 기자 주진우 두 사람의 풍부한 디테일이 더해지면 이들이 재구성하는 서사는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팩트'로 들린다. 술자리서나 나올 법한 '(유사)팩트'에 기반해 위태롭고도 유쾌한 언어로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주는 이들의 걸진 입담이 '나꼼수'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는 이 서사구조를 음모이론으로 풀이한다. 그는 "현실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나름의 가설 세우고 그에 맞는 증거들이 나왔을 때 가설이 입증됐다고 여기는 것이 음모이론"이라며 "'나꼼수' 열풍은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음모이론을 세련되게 변환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도정치권의 공식 발표와 해명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그 이면에 밀약과 검은 거래, 꼼수가 있을 거라는 전제가 만연해 있는 탓이다.

여기에, 이런 음모론을 통해 얻는 '나도 고급정보를 알게 됐다'는 쾌감과 고급한 만담이 주는 오락적 효과가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 출연진이 실컷 까발리고 나서 "가카는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은, 설화(舌禍)를 피하기 위한 영리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음모론이라는 서사구조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를 통역하는 폭로저널리즘

공영방송의 위기로 대표되는 억압된 미디어 환경도 '나꼼수' 신드롬의 중요한 토대다. 출연진인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마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주요 사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가카의 언론장악 꼼수" 덕에 '나꼼수'가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도 "현 정부 들어 언론이 권력감시 등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 대한 미디어수용자들의 분노가 '나꼼수'를 통해 해소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력자들의 치부를 폭로하고 조롱하는 데서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는 정치라는 공적 영역의 엄숙한 언어를 사적 영역의 세속적 언어로 통역해내는 출연진의 '말빨'에서 비롯된다. 욕설과 고성,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이들은 약자의 언어인 풍자와 패러디로 정치현실을 쉽고 유머러스하게 파헤침으로써 "정치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통쾌하다"는 반응을 끌어낸다. 여기에는 쉽게 들을 수 없던 '카더라' 통신의 온갖 뒷얘기들도 사례로 동원된다. 언어의 층위만 다를 뿐, '나꼼수'는 위키리크스의 폭로 저널리즘과도 유사하다.

여기는 예능공화국… 정치의 예능화

'나꼼수'는 '무한도전'이나 '라디오스타' 같은 예능프로그램의 포맷을 차용한다. 4명의 출연자가 각각의 캐릭터를 갖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가카'의 문제적 언행은 제왕 격인 김어준, BBK사건 등 정치 비화는 누구의 구박에도 굴하지 않는 정봉주, 디테일의 보완은 어눌한 듯 집요한 캐릭터의 주진우 등으로 나눠 그 꼼수를 분석하는 식이다.

정치의 예능화에 걸맞은 형식을 찾아낸 것은 '나꼼수'가 예능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주요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찧고 까불고 호들갑 떤다'는 예능프로 일반에 대한 비판은 '나꼼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치예능이라는 '나꼼수'의 형식은 정치의 대중화라는 순기능과 희화화라는 역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 정치 무관심 20대도 열광… 서적·토크콘서트 등 오프라인으로 확산

"건축 현장에서 아이튠즈와 앰프를 연결해 하루 종일 '나는 꼼수다'를 틀어놓습니다. 한 방송당 열 번 이상 듣죠." '나꼼수' 열성 팬인 이모(47ㆍ건축업)씨는 "현장 인력의 출신 지역이 다양해 자칫 감정이 상할까 봐 정치 이야기는 피해왔는데, '나꼼수'를 함께 들으며 자신의 정치색을 자연스럽게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장봉환(54ㆍ출판사 대표)씨도 "언론에는 나오지 않은 정치 뒷얘기를 엿들을 수 있어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나꼼수'에 대한 관심과 열광은 세대를 뛰어넘는다.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했던 20대의 반응도 뜨겁다. 친구의 추천으로 듣게 됐다는 대학생 유정미(21)씨는 "경박한 듯 하면서도 유쾌하고 날카로운 지적이 가미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파생 효과도 만만치 않다. 김어준씨의 정치평론집 <닥치고 정치> 는 출간된 10월 첫째 주 단숨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4위에 올랐다. 29, 30일로 예정된 '나꼼수'출연진의 토크콘서트는 양일 2,800석 표가 예매 시작 20분만에 매진돼 암표까지 등장했다.

최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황금시간대에 한 시간 정도 대담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나꼼수' 열풍에 또 다른 동력이 됐다. 팟캐스트의 성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도대체 나꼼수가 뭐길래"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나꼼수'는 애플의 아이튠즈에 기반한 팟캐스트를 통해 매주 새 방송을 업로드 하는 방식으로 유통된다. 일종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인 팟캐스트는 편성과 분량, 심의 등 제약을 받지 않아 누구든지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다. 이런 매체적 특성이 소셜미디어의 입소문 효과와 결합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출연진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알린 새 방송 업로드 소식이 이용자들의 리트윗(RT)을 통해 끝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식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 포기를 밝힌 지난달 7일 밤, '나꼼수'가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을 초대해 자정을 넘겨 녹음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 주 '나꼼수'는 트위터에서 1만 5,000회가 넘게 언급됐다.

그러나 '나꼼수'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나꼼수'에 서버를 제공하는 딴지일보는 8월 말 해킹으로 지난 1년치의 자료가 삭제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달 초 스마트폰 앱 심의를 하겠다고 발표해 '나꼼수'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선거철과 맞물리면서 대중의 카타르시스의 원천인 '성역없는 비판'이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유정미씨는 "젊은 세대는 현 야당에도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데 지난주 21회에서 서울시장 야권 후보였던 박원순 변호사와 박영선 민주당 의원을 출연시켜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한 것은 실망스러웠다"면서 "제작진이 야당 성향이어서 그런지 평소의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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