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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우리말 바르게 하기 운동 펴는 성우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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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우리말 바르게 하기 운동 펴는 성우 이종구

입력
2011.10.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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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이종구(61)씨는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스타는 아니지만 인기 드라마와 영화에 꾸준히 얼굴을 비춰왔기 때문이다. 영화 '추격자'의 심리분석관, '의형제'의 목사, 드라마 '자이언트'의 박 회장이었고 '제빵왕 김탁구'의 심사위원장이었다. 최근에는 문화방송(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교장선생님으로 얼굴을 비췄다. 성우로서 그의 목소리는 보다 친숙할 텐데 '검정고무신'의 강아지 땡구, '드래곤볼'의 계왕이자 해설자, '원피스'의 와포루였으며 88년부터 4년간 인기리에 방송된 한국방송(KBS) 라디오 드라마 '경제실록 50년'에서는 정주영 역할을 맡았다. 막 뒤에서 그는 우리말을 바르게 하자는 운동을 20여년 동안 펴왔다. 특히 '심성이 거세진다'는 황당한 이유로 사라진 된소리를 살려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글날을 보내면서 그로부터 올바르게 우리말 하는 법을 들어보았다.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발음대로 나오는 소리를 [ ]에 넣어서 표시했다.

_사람들이 우리말을 잘 못하고 있나요?

"사람들이 아니라 방송이 우리말을 틀리게 발음하고 있습니다. 효과는 [효꽈], 환율은 [환뉼], 밀가루는 [밀까루] 암덩어리는 [암떵어리]여야 하는데 억지스럽게 글자 그대로 [효과] [화뉼] [밀가루] [암덩어리]로 읽고 있습니다. 방송이 잘못 하니까 틀린 발음법이 일반으로 퍼지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_왜 이런 잘못이 생긴 건가요?

"원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에 우리말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담는 그릇으로 한글을 만든 것이니까 글을 보면서 본래의 말을 끌어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글자를 좇아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은 같은 글자라도 된소리 예사소리 긴소리 짧은 소리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짧게 하는 사과는 먹는 사과이고, 길게 하는 사과는 잘못을 비는 것입니다. [잠자리]는 곤충이지만 [잠짜리]는 침상이고 [볼거리]는 병이름이지만 [볼 꺼리]는 구경거리이고 [판돈]은 물건을 판돈이지만 [판똔]은 노름판의 돈입니다. [문구]는 문방구용품이고 [문꾸]는 글이지요. [인쩍(人的)]과 [인적(人跡)]은 전혀 다른 말인데 무조건 된소리를 피하고 예사소리로만 발음하게 하고 있습니다. 80년대에 잘못된 발음이 방송에 처음 등장하더니 1988년 한글맞춤법이 개정되면서 잘못을 편들어주는 규정이 들어갔습니다. 올바른 발음법에 추가해서 달리 발음할 수도 있다는 규정이 들어갔는데 덧붙이는 규정이 원래의 발음법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_어떻게 이런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나요?

"제가 77년에 동양방송(TBC) 성우로 방송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우는 우리 말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라 한글맞춤법을 외다시피 했지요. 최흘 고은정 신홍균 구민 오승룡 선배 같은 분들이 아주 잘 가르쳐주시기도 했고요. 70년대만 해도 긴소리와 짧은 소리를 혼동하는 경우는 있어도 된소리와 예사소리를 혼동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후에 어느 날 방송을 듣다 보니 아나운서들이 [불?j]을 [불법], [사껀]을 [사건]이라고 발음하더군요. 이상해서 KBS 아나운서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된소리를 발음하게 되면 사람 심성이 사나워지므로 예사소리로 발음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곰곰 생각해보니 80년에 전두환씨가 10ㆍ26 합동수사본부장으로 방송에 나왔을 때 이 분이 경상도 사람이라 된소리를 잘 못냈거든요. '본 [사건]은 [불법]이므로 [엄격]하게 조사해서 [공권력]을 확립하고…' 기억 나시나요? 이건 대통령한테 아부하려고 시작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그러니까 경상도 사투리가 표준말 발음법에 침투해서 그런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만 그런 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때는 전라도 사투리가 또 방송언어에 스며듭니다. 2009년까지 '가족오락관'이라는 오락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여기에 '불협화음'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진행자인 허참씨가 [부렵퐈음]이라고 발음했거든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되고 나서 [부려봐음]이 되는 겁니다. 이걸 국어학에서는 'ㅎ 탈락'이라고 하는데요. 김대중 대통령은 호남 사투리의 영향으로 북한을 [부칸]이 아니라 [부간]으로, 생각하지를 [생가카지]가 아니라 [생가가지]로 발음했어요. 그 후에는 방송언어가 답답하고를 [답다파고]가 아니라 [답다바고], 급급하고가 [급그파고]가 아니라 [급그바고], 괜찮다가 [괜찬타]가 아니라 [괜찬다]로 나옵니다. 요즘 방송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니를 [어떠케 생가카니]가 아니라 [어떠게 생가가니]로 해요.

_원래 말이란 것이 권력과 밀접한 연관은 있지요.

"그렇더라도 자연스레 해야지, 이렇게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말뜻이 달라지고 사라지기까지 한다면."

_원래 맞춤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원래 한글맞춤법에는 '-(으)ㄹ 뒤에 연결되는 ㄱ ㄷ ㅂ ㅅ ㅈ 은 된소리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88년 개정안에서 '다만 끊어서 말할 적에는 예사소리로 발음한다'고 붙여놓았습니다. 할 수는, 갈 곳, 만날 사람은 [할 쑤는] [갈 꼿] [만날 싸람]으로 발음되어야 하는데 끊어서 발음하면 쓰인대로 읽으라는 규정을 첨가해서 두 가지로 읽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원래 말이란 끊어서 하면 대단히 부자연스러운데도 사람들은 [올까을]을 [올가을], [어제빰]을 [어제밤], [산짜락]을 [산자락], [삼년똥안]을 [삼년 동안], [쓰레기떠미]를 [쓰레기더미]로 발음하고 있습니다. 또 사이시옷이 없지만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합성어에도 뒤 단어의 첫소리 ㄱ ㄷ ㅂ ㅅ ㅈ은 된소리로 발음하는 것이 정상인데도 이 '다만 규정'을 따라서 예사소리로 읽고 있습니다. [문쏘리] [물똥이] [아침빱] [보름딸] [등뿔] [창쌀] [술짠] [발빠닥]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들이 모두 표기법 그대로 발음되는 실정입니다. 또 받침소리 ㄱ ㄷ ㅂ 뒤에는 자연스레 된소리가 되는데 그것도 억지로 안 쓰고 있어요. [책빵]을 [책방]으로 [짚씬]을 [짚신]으로 [넓께]를 [넓게]로 말합니다. [나이깝] [밤낄] [용똔] [물뼝] [기름끼]처럼 다른 말이 앞에 오면 늘 된소리가 되는 글자(값 길 돈 병 기)도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을 한번 읽어보세요. 자연스레 된소리가 나옵니다. 쓰인대로 읽으려면 굉장히 힘들고 어색합니다. 그런데도 잘못된 발음이 '다만 규정' 때문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다만 규정'이라는 것은 직접 명명하신 건가요?

"네, 다만이라는 단서를 넣어서 억지로 글자대로 읽는 것을 허용한 규정이라서 이렇게 불러봤습니다. 된소리 뿐만 아니라 'ㄴ덧나기'를 없앤 '다만 규정'도 있습니다. 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앞 단어나 접두사의 끝이 자음이고 뒤 단어나 접미사의 첫음절이 이 야 여 요 유인 경우에는 ㄴ음을 첨가하여 니 냐 녀 뇨 뉴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솜이불은 [솜니불]이고 홑이불은 [혼니불] 막일은 [망닐] 내복약은 [내봉냑] 색연필은 [생년필] 담요는 [담뇨], 눈요기는 [눈뇨기] 영업용은 [영엄뇽] 식용유는 [시??뉴]인데 '다만 규정' 때문에 [소미불] [마길] [내보갹] [새견필] [다묘] [시??유] [영어??이라고 읽지 않습니까."

_그러니까 원래 발음법이 아니라 다만 이후만 따르는 방송인들이 문제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다만 규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표준말은 하나로 규정해야 하거든요. 여러 가지 방언이 있어도 표준어는 하나이듯이 말도 표준발음은 한가지여야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면 원칙은 없다는 말입니다."

_바로잡기 위해 애를 쓰셨나요?

"그때부터 방송을 들을 때마다 메모를 해서는 아나운서실이나 담당 프로듀서에게 인터넷으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차 안에서 방송 듣고 메모하다가 사고낼 뻔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국립국어원에 바로잡아 달라는 메일도 꾸준히 보냈습니다."

_바로 잡히던가요?

"아나운서 가운데는 동의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방송이 바뀌지는 않더군요. 국립국어원에서는 아예 '같은 질문이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말로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사람 이름에는 ㄴ덧나기가 아예 안 일어난다'고 잘못된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하더군요. 발음법이라는 것은 이름이든 단어든 똑 같은 원칙으로 통용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정동영은 [정동녕]이고 기성용은 [기성뇽], 이청용은 [이청뇽] 김연아는 [김년아]인데 쓴대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방송심의위원회 언어특별위원으로도 활동해봤는데 거기서도 문법 비속어 외래어 드라마 내용은 지적하면서도 된소리 예사소리 긴소리 짧은 소리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말입니다. 결국 2004년에 한글학자 성우들과 힘을 합쳐 '한국어 바르고 아름답게 말하기 운동본부'를 만들었어요. 요즘도 올바른 우리말 발음법을 담은 '우리말을 살립시다'라는 메일을 1,000여명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_그를 통해 짜장면이 표준말이 되게 하는데 기여도 하셨고요.

"개정된 한글맞춤법은 글자대로 발음하라고 하면서 글자대로 발음이 안되는 것은 글자를 바꿨어요. 가령 '몇일'은 '며칠'로, '했읍니다'는 '했습니다'로 바꿨어요. 그러면 '했으니까'는 '했스니까'가 되어야 하는데 이건 또 아니거든요. 게다가 짜장면은 언중이 모두 이렇게 말하는데 자장면이 표준말이라고 하고. 이번에 짜장면을 표준말로 받아들이면??자장면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2004년에 '민주주의의 의의'는 어떻게 발음하느냐고 국립국어원에 문의했더니 '의는 ㅢ로 소리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첫음절에서는 늘 ㅢ로 소리내고, 첫음절 이외의 의는 ㅣ로 소리내는 것도 허용하고 조사로 쓰인 의는 ㅔ로 소리내는 것을 허용한다'고 일러주더군요. 이 원칙을 따르면 '민주주의의 의의'는 8가지로 발음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예, 례 이외의 ㅖ는 ㅔ로도 발음한다'는 규정도 있어요. 요즘 방송을 보면 '의'라는 복모음을 [으]로 발음하고 [계시다] [혜택] [개폐] 같은 복모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ㅖ와 ㅔ는 분명 다른 발음인데 국립국어원이 나서서 하나로 만들어버리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밖에도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_연기자로서 세종대왕 역이라도 한번 하셔야겠어요.

"제 얼굴에 임금 역할이…(웃음) 내년 6월쯤 국립극장에서 이윤택씨가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궁리'를 초연하는데, 제가 최만리 역할을 맡을 예정입니다. 한글 창제에 반대한 그 최만리 말입니다.(웃음)"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사진=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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