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폐혜를 비판하는 미 월가 시위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분노에서 시작됐다. 탐욕과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된 금융시장이 타깃이다. 그러나 한달 째 접어든 반(反) 자본주의 시위는 이제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산업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8일 "1960년대 반전운동에 투신했던 부모뻘 세대가 시위대의 분노에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1999년 미 시애틀에서는 반 세계화 시위가 열렸다. 당시 시위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를 지연시키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경찰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고무탄과 폭동 진압용 후추 스프레이를 동원했지만 이들의 폭력적인 시위가 더 큰 비난을 받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180도 변했다. 유투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첨단 매체는 주류 언론이 공개를 꺼리는 진실을 폭로한다.
자신을 할머니라고 소개한 마거릿 쿤슬러는 밤마다 월가 인근 주코티 공원에서 열리는 대중 집회에 참석한다. 시애틀의 반 세계화 시위에도 참여했던 그는 월가 시위에 대해 "어떠한 공권력도 시민의 힘을 억누를 수 없다"며 과거 시위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매일 미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시위 현장에서는 할머니평화단체(GPB)와 미국 은퇴자협회(AARP) 회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시위 모토가 장년층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뉴욕 포드햄대 마크 나이슨 교수는 "일자리 부족과 기회 박탈은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평화적 시위를 고수하는 시위대의 행동도 동정론을 불렀다.
월가 시위가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정치적으로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시위대의 지지를 확보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 등에 반대하며 시작된 티파티 운동이 공화당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그 동안 진보적 유권자들을 결집할 대중운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6일 "젊은층의 분노는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간접적으로 시위대를 두둔했다. 민주당도 결과와 관계없이 이번 시위가 차기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공화당 전략가인 데이비드 존슨은 "잘 차려입은 중산층이 시위대에 합류한 것은 비루한 학생운동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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