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코앞에 왔다. 아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어린이집 소풍날 말이다. 원래 일정은 1주일 전이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연기됐다. 소풍 며칠 전부터 나까지 덩달아 들떠 부산을 떨었다. 옷은 뭘 입고 갈까, 버스에서 어떤 친구랑 짝꿍을 할까, 김밥을 쌀까 주먹밥으로 쌀까 아이와 함께 즐거운 고민을 했다.
소풍 전날. 김밥으로 하자는 아이 손을 잡고 퇴근 후 시장엘 갔다. 김밥용 김과 당근, 시금치, 우엉, 단무지, 햄 등 재료를 샀다. 그리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김밥 싸기 작업에 돌입했다. 일단 시금치와 우엉, 당근에 양념이 잘 뱄나 맛부터 봤다. 그러다 문득, 한두 달에 한 번씩 김밥 쌀 때마다 보는 이 '식물'들에 대해 아는 게 뭐 있나 싶었다. 넋 놓고 앉아 김밥만 싸는 게 무료하기도 해서 식탁 귀퉁이에 노트북을 켰다.
시금치는 식물분류학적으로 명아주과에 속한다. 잎 모양만 보면 시금치나 명아주나 비슷하게 생겼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엉은 국화과, 당근은 미나리과란다. 생긴 걸로 치면 우엉이랑 국화, 당근이랑 미나리가 딱히 공통점이랄 게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생물학에서 식물을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꽃이나 잎, 줄기, 뿌리 등 식물을 구성하는 주요 기관의 형태다. 먹는 부분은 전혀 다르게 생겼어도 다른 특정 기관의 형태에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면 식물분류학적으로 같은 그룹에 속할 수 있다. 우엉과 국화, 당근과 미나리가 바로 그런 예다. 두 경우 다 꽃이 서로 닮았다.
김밥에 넣거나 반찬으로 만들어 즐겨 먹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우엉이나 당근, 미나리의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굳이 궁금해하는 이들도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식물분류학자도 많지 않다. 생물학계 안에서도 분류학은 소외 받는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요즘엔 첨단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식물 유전자 분석이 쉬워지면서 기존 형태 중심의 분류 체계가 흔들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김새는 전혀 달라도 유전자가 비슷하면 같은 그룹으로 볼 거냐에 대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분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거냐는 과학자들 몫이라 쳐도 적어도 식물을 먹거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고 진지하게 관찰하는 과학도들부터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통 크기의 반만하게 만 미니김밥으로 도시락을 거의 채웠을 때 아이가 잠에서 깼다. 싸고 남은 김밥을 아침으로 먹으면서 아이가 "엄마, 김밥뿌가 너무 작아"하고 핀잔을 줬다. 먹는 모습을 보니 진짜 그랬다. 이제 미니김밥 아니어도 될 만큼 아이가 많이 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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