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됐던 아들이 1년 만에 전화해서는 '아빠 나 여기 목포야. 일이 너무 힘들어'라고 울부짖더군요. 새우잡이 배에 또 다시 팔려간 뒤 폭행과 협박을 견디다 못해 구조요청을 한 거였죠."
정신지체장애 2급인 아들(29)과 함께 부산에 사는 권모(56)씨는 지난 5월 아들과 재회한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굳은살이 박힌 손, 검게 탄 얼굴과 팔, 구타로 부러진 앞니 4개 등 아들의 몰골을 똑바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그간 아들이 홀로 겪었던 일을 전해 듣고 나서는 더욱 기가 막혔다.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전남 목포시로 보내 진 뒤 술과 여자를 소개해 하룻밤을 자게 하고는 수백 만원의 빚을 지게 만들었어요. 이를 갚으라며 김 가공공장, 새우잡이 배에서 일을 시킨 겁니다."
권씨의 아들은 범행을 공모한 직업소개업자, 선주, 염전주인 등에게 지난 2007년부터 세 차례나 속았는데 심지어 3개월 배를 타고도 단돈 2만원을 손에 쥐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지체장애인과 노숙인들을 꾀어 선불금을 주고 새우잡이 배와 염전 등에 매매하는 일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2주 동안 전국 도서ㆍ해안지역 등에서 실종자 수색활동을 벌여 전남지역의 섬과 근해 어선에서 무연고 장애인과 가출인 5명을 찾아냈다. 당시 수색에 참여했던 한 지방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인력부족 등으로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인신매매돼 있는 사람이 적어도 수백 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서지역 염전이나 새우잡이 배 등에선 왜 이들을 데려가려는 것일까. "염전이나 새우잡이 배는 고된 작업강도에 비하면 임금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일하겠다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신지체 장애인과 노숙인들은 업자들의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간다. 과거엔 정상적인 사람을 물리력을 사용해 납치했다면 최근에는 무지하고 어수룩한 피해자들에게 빚을 씌우는 식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20대 정신지체장애인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꼬드긴 뒤 전남 영광군의 한 염전에 팔아 넘긴 일당을 검거한 서울 서부경찰서 류남영 경위의 설명이다.
이들의 작업환경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4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일대 100만㎡(32만평)에 달하는 염전 밀집지역을 찾았다. 약 90여개의 염전업체가 모인 이곳에서 소금 채취 작업에 나선 인부들은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라디오방송을 노동요 삼아 2~3시간씩 허리를 굽힌 채 삽질을 했다. 수확한 소금을 창고에 넣는 컨베이어 벨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한 염전 직원은 "월급은 80만~120만원인데 일이 고되니 염전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직원들 평균 나이도 60대 초반"이라고 전했다.
새우잡이 배도 마찬가지다. 지방해양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새우잡이용 '다짜망' 어선의 경우 하루 잠자는 2~3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그물을 거둬들여야 한다. 월급이 200여 만원이지만 3, 4평 공간에 5, 6명이 길게는 8개월 동안 지내야 하는데 건장한 남성도 버티기 힘들다"고 전했다.
인력난이 심해지다 보니 구인 방식도 달라지고 있었다. 선불금조로 술값과 성매매 비용을 주며 구직자들을 유인하던 방식으로 올가미를 씌우는데, 그 대상이 노숙인과 정신지체장애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목포시에서 30년 넘게 소개소를 운영한 한 남성은 "불안한 수급 때문에 검증 안된 노숙자나 일이 느린 정신지체장애인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들도 욕구가 있고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앞뒤 계산을 안 하기 때문에 속이기 쉽다. 또 협박 및 감금을 해도 반항하지 못하는 등 관리가 용이하다"고 말했다.
선주나 염전업체 주인들 또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목포에서 25년간 다짜망 어선을 운영했다는 이모(43)씨는 "우린 소개소를 믿고 수백만원에 이르는 선불금을 지급하는데 직원이 힘들다고 도망가버리면 그걸 막는 과정에서 감금과 폭행이 일어난다. 실제 정신지체장애인을 한 명 고용하고 있는데 작업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한 직업소개소 사장은 "고용은 업주들의 고유 권한이지만 선불금과 대가성 성매매 등 범죄로 이어지는 건 소개소의 책임이 크다"며 "제대로 된 인력검증을 해야 선주, 염주와의 신뢰도 회복되고 양질의 구직자도 모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사기, 폭행 등 각종 강력범죄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목포경찰서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인신매매를 벌이는 조직에 대한 수사를 확대해 엄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목포ㆍ영광=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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