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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세계를 바꾼 네 번째 사과

입력
2011.10.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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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가 있었다. 신화 속 이야기였으나 역사적 사실로 인정돼 있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은 황금 사과다. 따돌림을 당한 여신(女神)이 황금사과를 남기며 그 주인에게 세계 최고의 미인을 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과를 얻은 사람은 최대 강대국 트로이의 왕자였다. 그는 스파르타의 왕비를 선택하여 트로이로 데려 갔고, 왕비를 빼앗긴 스파르타가 그리스와 연합군을 만들어 트로이와 10년 전쟁을 벌였다.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이 만든 목마 때문에 멸망했다.

BC 1200년대 이야기로 기록은 없고, 다만 BC 8세기 호메루스가 구전 내용을 서사시로 엮은 와 에 소개돼 있다. 1870년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지금의 터어키 지역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면서 포괄적인 사실성이 인정됐다. 그 곳에서 황금사과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류 변혁의 계기 됐던 사과들

두 번째 사과는 빌헬름 텔의 사과다. 스위스가 오스트리아 식민지였던 때의 이야기다. 오스트리아 총독은 스위스 중심 광장에 자신의 모자를 걸어놓고 스위스 국민들에게 인사하길 강요했으나 사냥꾼 텔은 이를 거부했다. 반란죄로 검거된 그는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그것을 맞추기를 강요 당한다. 사과를 명중시킨 대가로 그는 사형 대신 유배형을 받았는데, 나중에 그 총독을 그 활로 쏘아 죽여 국민의 환호를 받는다는 이야기다.

'1307년 11월 18일 스위스 알트도르프 마을 광장'이라고까지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텔의 사과 이야기는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가 희곡(1804년)으로 만들고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가 오페라로 공연(1829년)하면서 사실처럼 인식됐다. 11, 12세기부터 북유럽을 중심으로 사냥꾼 사회의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를 당시의 사회에 빗대어 만든 픽션이다. 하지만 스위스 국민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실제 역사로 믿는다고 한다.

세 번째 사과는 아이작 뉴턴(1642~1727)의 그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던 중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땅(지구)이 끌어당겨서?'라는 의문을 가졌다 한다. 그것만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것이야 아니겠지만 뉴턴이 그 이론을 정립해 발표할 당시(1665년) 사과의 낙하를 언급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파리스의, 빌헬름 텔의, 뉴턴의 사과는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세계를 바꾼 세 개의 사과'로 불리고 있다. 파리스의 사과는 트로이 전쟁을 계기로 그리스 로마 중심의 헬레니즘 문화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로 확산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빌헬름 텔의 사과는 힘 없는 민중ㆍ민족의 저항을 대변한 내용으로 봉건ㆍ귀족사회를 무너뜨리고 자유ㆍ민주주의를 불러오는 계기로 인정 받았다. 뉴턴의 사과는 근대 자연과학의 기반을 마련하여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현대 문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100년 뒤에까지 기억될 '애플'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과)'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네 번째 사과로 꼽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지난 5일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세계의 언론이 쏟아내는 '인간 스티브 잡스'에 대한 평가들이 대단하다. 그의 출생과 역정, 그의 생각과 노력,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놀랍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그가 완성해 놓은 '애플'에 비하면 오히려 '인간 스티브 잡스'는 작아 보이기도 한다. 컴퓨터 변혁이 시작되기 전과 현재, 앞으로 예상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애플'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앞선 세 개의 사과'보다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1970년대 애플사(社)가 초창기에 사과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 뉴턴의 모습을 회사의 로고로 삼은 것도 '네 번째 사과'를 추구했던 때문이었을 터이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안철수 원장은 "100년 후의 사람들은 현재의 모든 것을 잊더라도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은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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