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황홀/성석제 지음/문학동네 발행ㆍ356쪽ㆍ1만3,800원
"상추에 밥을 약간 얹고 멸치조림을 듬뿍 얹은 뒤 쌈장 약간과 남해 특산 마늘을 고명으로 얹어 입에 집어넣었다. 좀 짜다 싶더니 밥이 당겼다. 밥과 함께 쌈을 싸면 크기가 너무 커져 한 입에 넣기에 무리가 있고 국물이 흐를 염려도 있다. 입 안에 들어온 멸치는 고소하고 전혀 비리지 않으며 씹히는 맛이 있다. '칼슘의 왕' 멸치는 물론 마늘, 쌈장에 포함된 된장, 고추장이 모두 조미료다. 젓갈과 김치, 그때그때 나오는 해산물이 밑반찬으로 나오니 그냥 밥만 먹어도 맛이 있을 성싶다. 밥알이 부드러우면서도 차지고 달았다. 먹고 난 뒤에는 입 안이 개운했다."
소설가 성석제(51)씨가 음식의 세계를 구수하게 안내하는 신간 에세이 <칼과 황홀> 에서 '멸치의 천국'의 한 토막이다. 저자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비행 시간만 26시간이 걸리는 남미 칠레까지 천하를 유람하며 맛본 다양한 음식과 사람들의 정겨운 일화를 담았다.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한 글에 국수, 두부과자, 포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더했다. 오후 5시에 연재 글이 올라가면 '위를 후벼 파는 맛 고문'이라는 독자들의 원성과 글을 읽기 전에 '반드시 턱받이를 둘러야만 흘러내리는 침을 감당할 수 있다'는 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칼과>
"천하를 돌아 다니면서 보고 듣고 겪고 만나고 맛보고 느끼는 것은 결국 내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의 근간이 되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세상을 지각할 기본적인 도구가 없는 셈으로 정말 줏대도 정신도 없이 황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생의 축복이다." 성씨가 <칼과 황홀> 의 원고를 교정하면서 느낀 점이다. 칼과>
책 곳곳에는 만화가 정훈이의 재치 넘치는 삽화가 실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 뒷부분에는 맛지도와 함께 책에서 언급한 식당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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