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섹토피디아/휴 래플스 지음·우진하 옮김/21세기북스 발행·655쪽·2만8,000원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이는 기생곤충이다. 병을 옮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해를 입힌다. 역겹다. 세상에 이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1940년대 나치는 유대인을 '이'에 비유했다. 나치의 정신적 토대였던 게르만 순혈주의에서 보면 유대인은 불결했다. 이나 마찬가지인 '기생 인간' 유대인은 청결하게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됐다. 그 방법으로 나치는 구원이 아닌 징벌을 선택,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2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박멸'했다.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치클론B)가 건물과 옷에 있는 이를 없애려고 개발한 살충제였으니, 말 그대로 박멸이었다.
유대인 대학살이 한창이던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설을 주도했던 나치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가 한 말은 상징적이다. "우리에게 반유대주의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청결의 문제다. 이제 이는 고작해야 2만 마리만 남았다. 독일 전체에서 곧 모두 사라질 것이다." 히믈러에게 유대인은 '마리'로 숫자를 세는, 인간 이하의 존재였던 것이다.
휴 래플스 미국 뉴스쿨대 인류학과 교수가 쓴 <인섹토피디아> 는 나치가 유대인을 이 취급하면서부터 인간성 말살이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성 말살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표적이 된 집단을 인간이 아닌 특정 생물로 규정하는 일. 둘째, 그 생물의 부정적인 특징을 찾아내는 일. 여기에 딱 맞는 게 '이'말고 또 있을까. 인섹토피디아>
'인섹토피디아'는 영어 단어 곤충(insect)과 백과사전(encyclopedia)을 합성한 말. 이책은 단순히 곤충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지 않는다. 저자가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여러 사람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과 역사, 문화 등을 넘나들며 곤충을 통해 인간 사회를 엿본다.
마천루가 드높은 곳, 21세기 중국 상하이의 한 귀퉁이에선 당나라 때부터 내려온 귀뚜라미 씨름 대회가 매년 8월부터 3개월간 열린다. 경기장에 선 귀뚜라미들은 서로 턱을 부딪치고 휙 뒤집어지기도 하면서 육탄전을 벌인다. 붉은 피가 보이지 않고 비명 소리도 나지 않는 싸움이지만, 저자는 이 오래된 전통에서 다른 생물에게 폭력을 강요하며 대리만족을 얻는 인간의 잔인성을 본다.
<파브르 곤충기> 로 유명한 프랑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 얘기도 흥미롭다. 1911년 프랑스에선 파브르를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닌 문학상 후보로 추대하자는 운동이 잠깐 일었다. 과학자라기보다 곤충을 관찰하고 노래한 '곤충 시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 파브르는 과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곤충은 변하지 않는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그의 주장은 본능이 자연선택에 따라 바뀌고 강화한다는 진화론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파브르>
다시 나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최근 국내에선 동남아에서 온 이주민을 벌레 취급하는 신조어가 생기고 있다. 파키스탄 사람은 '파퀴벌레'라 불린다. 파키스탄과 바퀴벌레를 합친 말이다. 하인리히 히믈러가 보면 뭐라고 할까. 책에 나오는 크고 작은 26가지 이야기는 이처럼 인간 사회에 의문을 던진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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