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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혼란과 불신 자초하는 '예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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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혼란과 불신 자초하는 '예술영화'

입력
2011.10.0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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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산하에 예술영화인정심사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위원회 명칭을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술로 평가할 만한 작품들을 걸러내는 일을 하겠거니 쉽게 추측해버린다. 문제는 이 '예술'이라는 범주가 매우 주관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영화 쪽으로 초점을 좁혀도 어려움은 여전하다.

우선 영화 관계자나 전문인들이 생각하는 예술영화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예술영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영화 관계자들이 예술영화를 상업영화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평범한 관객들은 영화의 만듦새가 탄탄하고 감동을 주면, 그 작품이 어떤 의도로 기획되었는지에 상관없이 그 또한 예술영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즉 제작과정이나 기획 의도에 대한 고려 없이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게다가 예술영화에 대한 각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양 집단 내에서도 세계관, 인생관, 영화관에 따라 또 다시 '차이들'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예술영화소위에서 심사를 하는 사람이나 심사를 받는 쪽 모두 곤혹스러워질 때가 많다.

물론 심사기준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 '예술영화 인정에 관한 심사운영 세칙'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다음 네 가지다. 1. 작품 가치가 뛰어난 국내외 작가영화, 2. 소재, 주제, 표현방법 등에 있어 새로운 특색을 보이는 작품으로서 창의적 실험적인 작품, 3. 한국 내에서 거의 상영된 바 없는 개인, 집단, 사회, 국가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문화 간 지속적 교류, 생각의 자유로운 유통, 문화다양성의 확대에 기여하는 작품, 4. 예술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재개봉 작품. 뿐만 아니라 '위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영화들 역시 예술영화로 인정할 수 있다는 항목까지 있다(영진위 제작지원 배급지원 작품,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실험영화 등 시장 점유율 1% 이내인 영화 형식의 작품, 심의연도 직전 3개년 평균 전국 기준 시장 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

이쯤 되면 예술영화라는 지표가 가질 수 있는 차별화 기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예술영화라는 범주가 이것저것 무리하게 구겨 넣을 수 있는 잡동사니 보따리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력이나 완성도는 어찌 됐든 '다양성=예술'이라고 강변하는 듯한 그 단순한 공식은 특히나 문제적이다. 이러다 보니 국내외적으로 명실 공히 인정받는 중견감독들의 걸작과, 여러 모로 엉성하기 그지없는 아마추어 수준의 영화, 참신성이라곤 찾기 힘든 저예산영화들마저 예술영화라는 하나의 이름표 아래 양산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이 심사가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예술영화 전용관은 스크린을 독과점하는 큰 규모의 상업영화에 밀려 상영 기회를 잡기 힘든,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의미있는 영화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영화로서의 장점이나 질을 엄격히 따지는 심사를 하면 극장 측에서 프로그램을 채울 콘텐츠가 부족해진다는 하소연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극장 편의주의 때문에 정말 잘 만들어지고 가치가 있는 작은 영화들이 전용관에서조차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채 '무늬만 다양한' 영화들과 나란히 의무 편수나 채우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그런 만큼 이제 예술영화라는 타이틀과 전용관 운영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 찬찬히 되짚어 볼 때가 된 것 같다. 완성도나 공감의 측면에서 관객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예술영화, 전용관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 거의 기계적으로 인증되는 예술영화라면 뭔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김선엽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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