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애플)과 삼성의 관계는 3대에 걸친 인연으로 이어져왔다. 업계에선 이를 '애증의 역사'로 표현하고 있다.
잡스는 28년 전인 1983년11월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만났다. 당시 잡스는 PC를 만들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스물여덟의 새파란 젊은 사업가였다. 이병철 회장은 잡스를 면담한 뒤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며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또 잡스에게 ▦지금 하는 사업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세가지 경영철학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이건희 회장도 스티브 잡스를 종종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사장 역시 애플 본사를 자주 방문했고, 잡스가 아이폰 샘플을 직접 가져와 특징을 꼼꼼히 설명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지인들에게 "애플은 참 배울 게 많은 회사이고 잡스는 그야말로 천재"라며 평했으며 최근까지도 1년에 한두 번은 그를 만나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과 삼성의 관계는 올 초까지만 해도 이렇게 우호적이었다. 삼성전자에게 애플은 연간 8조원 가량의 LCD 등을 구입해가는 최대 고객이고, 애플 역시 삼성전자의 핵심부품 없이는 당장 스마트폰 제조에 차질이 생기는 입장이었다.
양 사의 관계가 벌어진 것은 올 4월 애플이 미국 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내면서부터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급부상하자 애플의 노골적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부터 양 사는 한치의 양보 없이 세계 9개국에서 27건의 특허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잡스는 삼성전자의 7인치 갤럭시탭 제품 등에 대해 "현재 나오는 7인치 태블릿 PC들은 '도착시 사망'하는 운명이 되고 말 것"이라며 특유의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감정대결로까지 번졌던 양사의 특허공방은 잡스의 사망으로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더 이상 배려는 없다"며 아이폰4S가 공개되자마자 특허침해소송을 냈던 삼성전자도 상중(喪中)인 애플을 자극하는 발언이나 법적 대응은 당분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기된 소송은 어차피 진행되겠지만 소모적 다툼을 피하기 위해, 잡스의 사망을 계기로 양측이 물밑 타협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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