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산업은 이제 '포스트 잡스'시대를 맞았다. 지난 수년간 애플이 주도해왔고, 이로 인해 애플과 반(反)애플 진영으로 양분화되었던 세계 IT업계는 이 구도를 만든 장본인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잡스 없는 애플?
가장 큰 관심은 애플의 시장리더십이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이냐는 점. 시장은 이 점에 대해 비관적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들의 흡인력은 결국 '혁신'에서 나오는 것인데, '혁신의 아이콘'인 잡스가 없는 상태에서 애플이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제품을 계속 내놓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잡스 사망 하루 전인 지난 4일(현지시간) 발표된 아이폰4S에 대한 평가부터 그렇다. 잡스가 CEO에서 물러난 뒤 처음 나온 제품이라 시장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업그레이드 수준에 머문 탓에 혹평만 받아야 했다. 외신들은 "벌써부터 잡스의 공백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잡스의 후계자인 팀 쿡 CEO의 능력과 리더십에 대해서도 시장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데뷔 무대였던 4일의 아이폰4S 발표회에서 그는 잡스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지루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실망감만 안겨줬고 결국 애플 주가는 4.5%나 급락했다.
일각에선 잡스와 함께 아이폰 신화를 만들었던 조너선 아이브 수석디자이너 등 옛 참모들이 곧 애플을 떠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승우 신영증권 IT팀장은 "애플이 잡스가 없어도 IT 업계의 선두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지는 절대로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애플 vs 반애플 구도는?
현재 세계 IT시장은 크게 보면 애플과 반애플, 더 자세히 보면 운영체계(OS)를 중심으로 애플(iOS)과 구글(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MSㆍ윈도 모바일)로 삼분되어 있는 상황. 만약 중심축인 애플의 위상이 추락한다면, 이런 글로벌 IT산업지형도도 바뀔 수 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구글과 MS쪽에 힘이 실릴 공산이 크다. 하지만 애플의 약화는 거꾸로 반대진영의 결속력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글이 거금을 들여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도, MS가 삼성전자와 손을 잡은 것도 사실상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경쟁력을 모두 갖춘 애플을 따라 잡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는데 애플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면 각 사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글 및 MS와 전략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전자의 운신폭은 한층 넓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고 어떤 OS도 탑재할 수 있다는 삼성전자의 멀티동맹, 멀티OS전략은 좀 더 힘을 받게 될 것이란 얘기다. 대신증권 박강호 연구원은 "공공의 적이었던 애플의 추진력이 약화된다면 반 애플 진영에서도 변화가 일 것"이라며 "멀티카드를 갖고 있는 삼성전자가 향후 글로벌 IT 업계 판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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