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은 노크 소리를 못 듣고, 머무르는 시간도 비장애인보다 길어 밖에서 버튼을 누르면 불빛이 깜박이는 별도의 화장실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반신 마비 여성은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에선 앞서 사용한 남성의 소변이 묻어 있어도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이 남녀 구분이 없는 서울 지하철의 장애인 화장실에서 느낀 불편함을 직접 호소한 말이다.
서울지하철 1~4호선에 설치돼 있는 장애인 화장실 중 절반 가량이 남녀 구분이 없거나,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아예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지하철 1~4호선 117개 역의 장애인 화장실 138개 중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은 57개에 달했다. 아예 장애인 화장실 자체가 없는 지하철역 화장실도 8개나 됐다. 장애인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있는 역은 70개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1995년 첫 운행을 시작해 서울메트로(1974년 운행 시작)보다 최신 역사를 가진 서울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148개 역 151개 장애인 화장실 가운데 남녀 구분이 돼 있지 않는 곳은 강동역(5호선) 등 모두 35개로 전체의 23.1%나 됐다.
중앙선 등 코레일 구간도 비슷해 수도권 200개 역사 중 남녀 구분이 없거나(17개) 장애인 화장실이 미설치된 곳(7개)은 총 24개로 전체의 12%에 이른다.
문제는 이런 장애인 차별은 법에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8월 18일 수도권 지하철역에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 공용으로 설치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19조 4항에 위배되는 차별행위라고 규정하고, 코레일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2006년과 2009년에도 장애인 화장실 남녀 공용 설치는 차별이라며 경기 수원시와 포천시 등에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코레일과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예산 확보가 힘들다며 시정을 미루고 있다.
서울도시철도 관계자는 "올해 서울시에 장애인 화장실 남녀 공간 구분을 포함한 화장실 개선공사 예산 20억원을 요청했지만 시가 재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사 간 책임 떠넘기기도 꼴불견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장애인 화장실이 미설치된 7개 역 중 4개 역에는 코레일 승강장만 있고 시설은 서울메트로 것이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도 "지축역, 충무로역은 연결된 서울도시철도공사 구간에, 고속터미널역은 인근 터미널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 우리 책임이 아니다"고 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인권위 권고 이후에도 서울시가 장애인 화장실 차별 철폐에 관련된 예산을 배정할 움직임이 없어 집단소송을 검토 중"이라며 "장애인의 이동 및 교통수단에 앞장서서 편의를 제공해야 할 지방 정부와 공공기관이 차별에 앞장서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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