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전세계 IT 업계의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5일 56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선 애플의 성장사만큼 파란만장했다.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몇 주 만에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 입양됐다. 위스콘신대 대학원 학생이던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조앤 심슨이 낳아준 부모였지만, 그는 사생아를 딱지를 안고 세상에 나왔다. 후에 결국 결혼했지만, 당시 심슨의 부모는 잔달리가 시리아 출신이란 점을 들어 반대한 때문이다. 심슨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잡스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했으나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잡스 부부의 약속을 받은 뒤 입양을 허락했다.
학창시절 잡스는 '사고뭉치'였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자주 빼 먹는 비행 어린이였다"며 "담임 교사가 돈과 사탕으로 구슬리는 것으로 겨우 학교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고교 졸업 후 명문 리드대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중퇴했다. 그는 훗날 "부모가 비싼 학비를 내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당시 5센트를 벌기 위해 콜라병을 모으고, 불교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11.3㎞를 걸어갈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다. 78년 고교시절부터 동거하던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 사이에 딸 리사를 낳았지만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10년 뒤 친자 확인 소송 끝에 딸로 받아들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생부와 닮았다는 뒷말은 이 때 나왔다.
그의 신화는 76년 애플을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4월 1일 그는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양부모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차렸다. "일생에 한 번, 회사를 차려 보는 거야"라는 후배 스티브(스티브 잡스)의 말에 감동한 선배 스티브(스티브 워즈니악)는 의기투합했다. 둘은 이듬해 개인용 컴퓨터(PC) 애플2를 내놓으며 PC 대중화를 이끌었다. 82년 20대 거부로 시사주간 타임지 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승승장구한 잡스는 85년에는 매출 부진을 이유로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굴욕은 잡스 신화의 서막이었다. 97년 13년 만에 CEO로 귀환한 그는 숨이 넘어가던 애플을 살리기 위해 "연봉으로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던 애플은 그의 복귀 한해 만에 4억달러 흑자로 반전했고, 아이팟(2001), 아이폰(2007), 아이패드(2010) 등 IT 업계의 신화가 줄줄이 탄생했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2009년 간 이식 수술까지 받는 투병생활에 시달렸다. 그러나 병마도 그의 창조성의 갈증을 가로막지 못했다. "죽음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도구"라며 혁신을 계속했다.
잡스의 삶은 끝났다. 그러나 애플은 홈페이지에 "스티브의 정신은 애플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며 불멸의 신화를 칭송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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