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앞바다에 침몰한 13세기 고려 선박 '마도 3호선'에서 몽골 항쟁에 앞장선 비정규군 삼별초의 조직과 지휘관의 품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 나왔다.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고 먹으로 쓴 목간이 열쇠다. '우별초 삼번의 도령(지휘관) 시랑(정4품 장군)'이라는 뜻이다. 이는 삼별초의 좌ㆍ우 별초가 각 3개 번으로 나눠진 조직이고, 종래 알려진 것과 달리 하급 무관이 아니라 장군이 지휘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올해 5월부터 진행해온 마도 3호선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태안의 마도 해역은 물살이 세고 안개가 짙어 고려와 조선 시대 난파선의 무덤 같은 곳. 마도 1호선은 2009년, 2호선은 2010년 발굴됐다.
마도 3호선은 길이 12m, 너비 8m, 깊이 2.5m 가량으로 지금까지 수중 발굴된 고려 선박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다. 연구소는 "그동안 나온 적이 없는 고물과 이물, 돛대와 돛대 버팀목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고려 선박 구조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 배에서 수습한 유물은 목간 32점, 젓갈 등을 담은 도기 항아리 28점, 곡물류, 사슴뿔, 장깃돌 등 287점. 특히 목간은 사료가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는 고려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목간의 기록으로 보아 이 배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해 있던 1260~1268년 경 전남 여수를 출발해 강화도로 가다가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개 댁으로 무슨 물품을 얼마만큼 보낸다'고 한자로 쓴 목간들에 등장하는 두 인물, 시랑(정4품) 신윤화와 유승제(승제는 왕의 비서관에 해당하는 정3품 벼슬)가 열쇠다. <고려사절요> 에 따르면 신윤화가 시랑으로 재직한 때는 1260년 전후이고, 이 무렵 승제 유씨는 유천우가 유일하다. 또 '여수현(呂水縣) 부사심(副事審) 댁에서 거둔 곡식 몇 말'이라고 쓰인 목간에서 '呂水'는 지금의 전남 여수(麗水)다. '사심'은 고려 때 중앙 관리가 자신의 본관인 지역에 연고권을 행사해 부역 등을 지휘하던 업무를 가리킨다. 고려사절요>
목간에는 고려 말 최씨 무신 정권을 무너뜨린 최고 권력자 김준도 등장한다. '사심 김영공님 댁에 올림'이라 적힌 목간의 '영공(令公)이 김준이다. '영공'은 고려 때 왕실의 제왕에게만 붙이던 극존칭인데, 1260~1268년 일반 관리로서 영공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은 김준뿐이고 여수가 그의 연고지라는 점에서 그리 본다.
마도 3호선의 화물은 고려인의 일상 생활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각종 젓갈, 말린 생선, 육포, 곡물 등 먹을거리가 대부분이어서 당시 권력자들이 즐긴 음식을 짐작케 한다. 개고기, 상어고기 육포와 전복 등 고급 조개류, 지혈 등에 약재로 썼던 홍합 수염이 많이 나왔다. 선원들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장깃돌은 작고 납작한 돌에 차, 포, 장군 등의 한자를 먹으로 써놨다.
마도 3호선 발굴은 24일까지 한다. 뻘에 처박힌 선체는 내년에 인양할 계획이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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