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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쥐뿔'이 '육갑'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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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쥐뿔'이 '육갑'을 했는데

입력
2011.10.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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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순흥 땅에 사는 鼠角(서각) 선배의 초대장을 받고도 가지 못했다. 적바림에 기록해 놓지 않아 날짜를 깜빡 했다. 서각 선배는 내심 기다렸을 것인데 두고두고 미안해야 할 일이 생겼다. 초대장의 제목이 '쥐뿔이 육갑을 한다' 였다. 쥐뿔은 서각이라는 선배의 아호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이고, 육갑은 육십갑자 즉 환갑잔치를 한다는 말이다.

요즘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이 없으나 환갑이 되도록 살게 해 준 고향이 고마워서 막걸리를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으니 '꽃도 필요 없고 노래 한 곡이나 이야기 한 자락 가져오라'고 했다. 그 뒤에 회갑을 기념해 출판한 산문집 <그리이 우에니껴?> 가 왔다. 서각 선배는 <쥐뿔의 노래> 란 시집을 낸 시인이다.

환갑에 시집을 묶을 줄 알았는데 산문집을 묶었다. 한 장 두 장 넘겨 가다 웃음폭탄이 터진다. 오랜 만에 책을 읽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산문집 속에는 '그리이 우에니껴?'란 그 지역 탯말을 나누며 사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봉두가 나오고, 전형적인 농민 강시위가 나온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그들이 대응하는 해학적인 에피소드가 배를 잡게 하다가 마지막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가 오영수 선생이 어린 시절을 '요람기'로 꽃 피웠다면 서각 선배의 산문은 '중년기'에 대한 뛰어난 기록이 될 것이다. 쥐뿔 선배가 육갑을 확실하게 한 것 같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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