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공짜!"
7일 낮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식당인 '충주비빔밥'이 점심 먹을 곳을 찾던 직장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6,000원짜리 비빔밥과 해장국이 무료. 대신 원하는 사람만 기부함에 돈을 넣으면 됐다. 아낀 점심 값으로 한부모 가정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해 주자는 것이다.
줄을 서야만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직장인들이 계속 몰려왔다. 이날 다녀간 손님은 180여명. 모두 72만1,640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이 식당의 하루 점심 매출은 60만원 정도라고 하니 취지에 공감한 손님들이 주머니를 많이 열었다는 뜻이다. 식당 사장 이추희(56)씨가 5년 전 처음 점심 값 기부행사를 했을 때만해도 26만2,000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씨 부부는 주변에서 여성이 가장인 한부모 가정을 볼 때마다 안쓰러워 가게 창업일인 10월 7일이 되면 무료 점심을 제공하고, 모은 기부금을 아름다운재단에 전달해왔다.
이씨는 "나도 사업에 실패를 해봐서 창업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며 "첫 해에 손님들 반응이 좋아 매년 하게 됐는데 올해는 특히 손님도 많이 오고 기부금도 늘었다"고 했다.
손님은 대부분 식당 근처 직장인. "지나가다 '공짜'라는 말에 혹해서 들어왔다"는 대학생, 귀한 손님을 의미 있는 곳에서 대접하려 일부러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조영두(42)씨는 "먼 곳에서 지인이 왔는데 꼭 이곳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아 모시고 왔다"고 했다. 회사원 정모(37)씨는 "직장인들은 일하고 돈 모으기 바빠 기부하기 힘든데 식사도 해결하고 기부도 하니까 의미 있어서 왔다"고 말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이런 행사뿐 아니라 평소에 점심값을 기부하는 직장인도 많다. 회사원 박성규(38)씨는 직장 동료들과 내기에서 이겨 밥을 얻어먹게 되거나 회사 법인카드로 먹을 때면 아낀 밥값으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금을 낸다. 회사원 은성훈(43)씨는 최근 26일 동안 점심값으로 모은 돈 15만6,000원을 기부했다. 은씨는 "배가 고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면서 결식 학생들을 돕고 싶어 점심을 굶고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점심값뿐 아니라 점심 식사 후 매일 마시는 커피값이나 간식을 줄인 돈을 기부하는 사례도 있다. 또 금연으로 절약한 담뱃값이나 퇴근 후 습관적으로 마시던 술값을 줄여 기부하는 '생활밀착형 기부'가 요즘 많다는 게 재단의 설명이다.
김아란 아름다운재단 간사는 "직장인들은 기부를 위해 따로 돈을 모으기가 빠듯한 만큼 점심값이나 커피 값 등 생활비를 조금 아껴 기부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며 "의미와 재미, 건강이 함께 하는 이런 기부문화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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