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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순천 단골과 통영 악사의 개열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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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순천 단골과 통영 악사의 개열림굿

입력
2011.10.0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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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왕님이 왔네~ 여수는 지금 민속 축제의 바다

"용왕님도 똑같은 용왕님이고, 사람도 똑같은 사람인디… 우리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소잉."

3일 어스름 전남 여수시 송소 포구. 제석굿을 시작하기 전 순천 단골이 통영 악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단골 박경자는 올해 여든, 악사 정영만은 쉰 다섯이다. 악사는 이날 경남 남해에서 배를 타고 건너 왔다. 악사가 피리잽이 새끼무당 시절 할아버지 따라 굿하러 다녔던 아득한 뱃길이다. 단골의 인사가 기억의 애틋한 토막을 건드린 듯, 악사의 얼굴에 소금 미소가 번진다. 뚜당, 장고를 잡은 악사의 팔이 허공에 하얀 호를 그렸다.

"왔네왔네 내가 와. 어느 혼신 아니 오며 어느나 귀신이 아니 올까. 천하궁 혼신도 내가 오고 지하궁 혼신도 내가 오고 물 위에 도신도 내가 오고 물 아래 도신도 내가 오고… 만고 영천에 혼신들. 내라도 많이 먹고 내 돌아가세. 왔네왔네 내가 와…"

악사의 반주에 맞춰 단골의 거먹색 목구멍에서 푸슬푸슬 사설이 흘러나왔다. 장단의 법식이 거추장스러운 시나위 가락, 굿이 깊어질수록 단골의 목소리엔 찰기가 붙었다. 신딸 둘에게 한 팔씩 붙들려 굿청에 선 늙은 단골은 제석굿에서 군웅굿, 뱃기세움, 고풀이로 넘어가며 훠이훠이 춤을 췄다. 바다에 어둠이 내렸다. 삭도(削刀) 같은 상현 달에 떠들썩한 포구의 저녁 바람이 잘려나갔다.

바다(개)를 여는 이날 개열림굿은 제52회 한국민속예술축제의 시작을 고하는 행사로 마련됐다. 이 굿은 조선의 풍습이 살아 있던 시절 뱃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은 넋을 위로하고 산 목숨의 안녕을 기원하던 바닷가의 전통이다. 선주들이 배의 깃발을 바다에 세 번 적셔 세우면, 무녀가 배에 올라 불 붙인 짚(불동)을 바다에 띄우며 액막이 기원을 한다. 이날 밤, 12톤 디젤 발동선 위에서 구경한 불 붙은 바다가 장관이었다.

3일 여수에서 만난 단골과 악사는 이 땅에 몇 남지 않은 세습무(世襲巫)다.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내려 무업(巫業)을 시작하는 강신무(降神巫)와 달리, 세습무는 나자마자 신청(神廳)으로 보내져 악기와 노래, 춤 등을 배운다. 그 가운데 박경자는 무당이 숱한 잡귀로 가장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토막극 형태의 굿인 삼설양, 정영만은 7, 8일 동안 당산굿 일월맞이 골매기굿 용왕굿 등을 계속하는 남해안별신굿의 마지막 명인이다.

"뭐 아쉬블 때는 와서 대모님, 대모님 카다가도 낫고 나면 홱 돌아서뿐다 아잉교. 굿이라는 게 본래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아아들한테 '이래 살아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교육의 의미가 있는 긴데…"

굿이 끝난 뒤, 천업(天業)이 천업(賤業)으로 대접 받은 세월에 젊음을 뺏긴 정영만이 들려준 얘기에는 소금 버캐가 앉아 있었다. '마지막 대사산이(으뜸 무당)'로 불리는 그이지만 이제 공연 무대가 아닌 진짜 굿청에 서는 날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날 굿판에서도 삶은 돼지고기와 막걸리 탁배기를 낸 제주(祭主)는 여수시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높으신 양반들. 간절한 바람이 있는 진짜 뱃사람은 아니었다. 굿의 흥이 삭기 전 단골과 악사는 일찍 자리를 떴다.

■ 제52회 한국민속예술축제 6일 여수 개막

올해 쉰두 해째인 한국민속예술축제가 6일부터 9일까지 전남 여수시 거북선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여수 지역 11개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하는 여수 문화예술인의 밤 '동동', 지난 반 세기의 민속예술을 회고하고 전망을 토론하는 사람난장 '막걸리와 민속', 마당춤 명인들이 꾸미는 '명무전'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청소년들이 꾸미는 '소둥줄놀이' 지난해 전국 청소년민속예술제 대상 작품인 '천안 거북놀이', 진도 지방의 독특한 장례의식을 담은 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 등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인 '거문도 뱃노래', 제7호인 '현천 소동패놀이', '고성 오광대' 등도 시연돼 관객의 흥을 돋운다. 전국 16개 시도 및 북한 지역 4개 팀 등 20팀이 참여하는 경연도 진행된다. 문의 (061)690-7200.

여수=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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