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간송미술관과 함께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는 호림박물관이 박물관, 도서관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아기자기한 전시를 마련했다. 서울 신사동 분관의 2개 층을 1층은 도서관처럼, 2층은 선비의 서재 물품으로 꾸며 관객을 맞고 있다.
1층에는 대접과 접시류 도자기 약 150점을 유리문이 달린 책꽂이에 진열했다. 고려청자부터 조선백자, 분청사기, 백자 태토에 푸른 유약을 발라 구운 백태청유자와 흑자까지 아름다운 그릇들을 전시했다. 각 유물에는 설명 대신 카드 번호가 붙어 있다. 목록함에서 해당 카드를 뽑아보면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예전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려면 도서 목록 카드를 뒤적이던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2층에는 선비의 서재에 있던 물건들을 모았다. 책거리 병풍과 거기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들, 선비들이 늘 곁에 두고 보던 책들, 서안을 비롯한 서재의 목가구들, 책을 읽거나 글 쓸 때 쓰던 각종 소품과 붓, 벼루, 먹 등을 볼 수 있다.
책은 <천자문> 을 비롯해 <사서삼경> , <자치통감> 같은 선비들의 필독서, 판화가 들어간 행실도 서적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했다. <천자문> 으로는 한석봉 글씨로 된 목활자본(1650)과, 1,000명이 한 글자씩 써서 각자 이름 쓰고 도장까지 찍어 완성한 필사본이 눈에 띈다. 천자문> 자치통감> 사서삼경> 천자문>
경연(經筵ㆍ왕이 유교 경전과 역사를 배우던 수업) 도장이 찍힌 경자자(庚子字) <자치통감강목> (1420)도 흥미롭다. 경자자는 계미자에 이어 세종 연간에 두 번째로 만든 금속활자이므로, 세종대왕이 보던 책일지도 모른다. 몇몇 구절에 붓으로 빨간 방점을 찍어가며 열심히 공부한 이 책의 주인이 궁금해진다. 계축자로 인쇄한 <자치통감강목집람> (16세기 초)은 학계에 안 알려졌던 것인데, 전시를 준비하느라 수장고를 조사하다가 찾아냈다고 한다. 이 책들은 전시장 한쪽에 놔둔 아이패드로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다. 자치통감강목집람> 자치통감강목>
책을 몇 번 읽었는지 표시하는 책갈피 모양의 서산(書算), 경전의 각 대목 앞 구절을 써놓은 한 뼘 길이의 가늘고 얇은 대쪽들을 담은 경서통(經書筒) 등 선비들이 공부할 때 쓰던 소품들은 꽤 실용적이다. 경서통에서 아무거나 뽑아 거기 적힌 구절의 다음 구절을 외워보는 것으로 공부를 점검했다고 한다. 편지지를 꾸미는 데 쓰던 시전지판(詩箋紙板)은 옛사람의 은근한 풍취를 보여준다. 매화나 난초, 길상 동물 등의 그림이나 시구를 새긴 작은 목판인데, 편지지에 찍어 보는 멋을 더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9일까지. (02)541-3525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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