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인가, 공정한 선택인가.'
영국 공영 BBC 방송의 연대표기법 변경 방침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BBC는 최근 기원전(BCㆍBefore Christ)과 기원후(ADㆍAnno Domini)로 나누던 연대표기를 종교적 색채가 덜한 BCE(Before Common Eraㆍ공동연대 이전)와 CE(Common Era)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이 "기독교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로마의 바티칸까지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4일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로마의 논평자)는 BBC의 연대표기 관행 변경 방침을 "역사적으로 무의미한 위선이자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가톨릭 역사학자인 루세타 스카라피아는 "가치중립적인 BCE, CE로 대체하겠다는 BBC의 명분은 위선"이라는 등 종교계의 성토가 잇따랐다. 다른 종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BBC의 주장에 대해서는 "서양 문화에서 기독교의 모든 흔적을 제거하려는 일부 세속적 서방인들의 의도"라며 "명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BBC의 방침을 프랑스 혁명력에 비유했다. 1793년 새로운 권력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의회가 혁명을 기점으로 한 프랑스 혁명력이나, 블라디미르 레닌과 베니토 무솔리니가 각각 도입한 달력도 결국 폐기됐다고 지적했다. 이데올로기 확산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도입한 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탄생 시점을 기준으로 연대를 나누는 것은 같은데 용어만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비난 여론이 거세자 BBC는 "일률적으로 변경하는 게 아니라 특정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개인 제작사나 편집팀에 선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의도"라며 한발 물러섰다고 dpa통신은 전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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