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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변혁의 세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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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변혁의 세기가 시작됐다

입력
2011.10.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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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않을 도리가 없다. 세상이 바야흐로 거대한 변혁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변화는 언제나 두려운 것이어서 알면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현실에서 웬만큼 안정을 누리는 이들에겐. 안철수현상에 화들짝 놀랐으면서도 그저 바람으로 믿고 싶어한 심리도 이 때문이다. 현실 각성효과 정도로 족하다고 생각했다(필자의 지난 칼럼도 그랬다).

그러나 박원순 변호사가 60년 정통야당의 단일 후보와 맞붙어 거둔 승리는 익숙한 세상에의 집착을 산산이 부순 결정타였다. 안철수는 판타지였으나 박원순은 현실이 됐다. 아니, 안철수도 이미 현실이었으나 완강한 인식이 그를 애써 비현실세계에 가두려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정치와 연 없는 시민운동가가 뜻을 세우자마자 단번에 중앙정치판을 뒤엎는 일을 어디 상상할 수나 있었던가.

수명 다한 기존 정치경제 시스템

여기에다 낡은 정치공학적 분석틀을 들이대는 건 부질없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취약한 당내 입지로 경솔하게 시민사회 진입공간을 허용하고, 불리한 경선 룰을 받아들였다는 등의 분석은 일면 타당하나 크게 보면 별 의미 없다. 분명한 건 오랫동안 정치행위나 정책결정의 객체였던 시민계층이 스스로 국가사회 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럴 권리와 힘이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4ㆍ19나 6월항쟁 때의 민의 분출에 비견하는 이도 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누적된 모순구조를 견디다 특정한 계기로 엘리트계층이 폭발, 일반시민사회로 번져나간 형태다. 그러나 지금은 계층에 관계없이 평범한 일반대중 모두의 의견 형성과 분출이 상시화(常時化)한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정치행위,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계층적, 시간적, 공간적 갭을 단숨에 없앤 SNS가 결정적 매개체가 됐음은 물론이다.

변혁은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다.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발원, 유럽으로 번져가는 시위는 의미심장하다. 자유주의경제서부터 케인즈경제학, 수정자본주의를 거쳐 또 다른 위기대안으로 등장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도 30년 만에 마침내 수명을 다했다. 구미 젊은 이들의 분노는 온전히 이 시스템의 무한경쟁, 승자독식 구조에 대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경제는 한마디로 열차에 오르려 해도 쉽지 않고, 달리는 열차에서 한 번 내려지면 다시는 제 길을 갈 수 없는 잔인한 영구탈락구조에 의해 지탱돼 왔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 서방을 휩쓴 젊은이들의 분노는 '소외' 측면에서 유사하나 그 땐 그나마 신좌파를 필두로 한 사상적 향도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모든 것의 해체에만 몰두했을 뿐, 새로운 건축을 위한 어떤 단서도 제시하지 않았다. 모두가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황량한 들에 대책 없이 내몰린 형국이다. 때마침 우리를 포함한 세계의 주요국 대부분이 지도력 교체기에 들어선 상황도 공교롭다.

정치에 국한해도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 도처에서 기존 정당들이 역할을 잃어가고 의회권력이 위축돼가는 현상이 일반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백인백색, 중구난방의 시민사회에 역할을 넘기는 건 지극히 위험한 아나키즘적 책임 방기다. 결국 해답은 정치시스템이 시민사회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의사 결집체로서의 기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의 닫힌 구조와 매사 정치공학적 사고방식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공동체 복원이 새로운 시대정신

구체적 대안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큰 방향이 '공동체의 복원'이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실용ㆍ효율 만능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폐기하고 대신 정의, 배려, 나눔, 소통, 신뢰, 겸손 등의 정의적(情誼的) 가치를 통해 국가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동질감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건 정치경제를 포괄한 문화와 인식의 총체적 변혁이다. 지금은 고작 권력교체기가 아닌, 그야말로 세계사적 전환기에 돌입한 시기임을 모두가 두렵고도 절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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