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목선을 타고 일본 근해에 표류했다가 그제 입국한 탈북자 9명 가운데 한 명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백남운의 손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비상한 관심을 끌 만한 일이다. 북한의 핵심 계층 가족까지 탈북 대열에 가세한다는 것은 북 체제 동요와 주민이탈 추세가 상당한 지경임을 뜻한다.
마르크시스트 경제사학자인 백남운은 1948년 4월 평양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잔류한 뒤 북한 최고인민회의 1기 대의원과 초대 내각 교육상, 노동당 중앙위원을 거쳐 1967년부터 5년간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월북 지식인 대부분이 비참한 말로를 맞은 것과 달리 북한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역임한 그는 1979년 사망해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이런 배경 덕분에 북한 내에서 남다른 혜택을 누렸을 핵심 계층 출신이 이탈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탈북자는 일본 공안당국의 조사에서 아버지가 남한사람 납북 업무를 담당한 노동당 간부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번 탈북자들은 먼저 탈북한 친척과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단파 라디오를 통해 남한의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4년 전부터 탈북 준비를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미화 수천 달러와 위안화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탈북 준비의 치밀함을 뒷받침한다.
이런 진술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대량 탈북이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극심한 식량난과 3대 세습 과정의 불안정 요인도 겹쳐 있다. 이들이 입국한 날에도 북한 주민 2명이 탄 선박이 동해를 통해 남하해 왔다. 정부는 해상 등을 통한 대량 탈북 사태를 상정해 충분한 대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중국 내 탈북자 대책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조만간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한 탈북자 35명의 북송 저지가 급선무다. 그 가운데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새터민 2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송을 막지 못하면 이들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는 뻔하다. 중국과의 외교에 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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