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예상된 악재에도 증시가 맥없이 주저앉는가 하면, 부양책을 시사하는 말 한마디에 급반등하기 일쑤다. 신용 리스크가 유럽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또 국가에서 금융기관으로 전염되는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위기의 진앙지인 유럽에선 4일(현지시간) 또 다시 악재가 터졌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3단계(Aa2→A2)나 강등한 것. 지난달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어서 그 자체로 시장에 큰 충격을 미칠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디스의 발표 이후 열린 아시아 증시에서 투자자들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이 예상대로 강등됐듯이, 스페인 프랑스 등 유로존의 강등 도미노 사태도 현실화할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파산설에 휩싸인 프랑스ㆍ벨기에 합자은행 덱시아가 결국 유럽 재정위기 이후 첫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시장의 공포는 순식간에 '금융기관 신용경색'으로 옮겨 붙었다.
5일 유럽의 해묵은 악재와 새로운 변수를 모두 떠안은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추락했다. 코스피지수가 2.33%(종가 1,666.52) 급락했고, 대만 가권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도 소폭 하락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을 90% 이상 확신하는 상황에서 유럽 은행들의 신용경색 위기가 불거지자 증시가 요동쳤다"고 분석했다.
반면, 앞서 4일(현지시간) 마감된 뉴욕 증시는 장 막판에 급등했다.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장 마감 후 발표된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추가 부양책 발언이 호재로 작용했다. 그는 이날 의회에서 "경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추가 경기부양책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은 립 서비스 수준이었는데도, 시장 분위기는 금세 역전됐고 결국 다우지수는 1.44% 상승 마감했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버냉키의 발언을 분석해 보면 완전 새로운 이벤트가 나온 게 아니라 결국 현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 또는 구제 기대감에 불과하다"며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한 징표"라고 말했다.
전날 2% 넘게 추락했던 유럽 증시도 5일(현지시간)에는 2%대 급등 출발했다. 유로존 정책 당국이 덱시아를 구제키로 결정한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각국에서는 시차를 두고 뉴스 하나하나에 울고 우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홍순표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이번 달에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등이 예정돼 있다"며 "글로벌 공조가 구체화하면서 해법을 찾기까지는 각국마다 변동성 큰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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