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5일 사의를 접었다. 전날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데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사퇴의사를 번복한 것이다. 모양새는 썩 좋지 않다. 하지만 사의 표명과 철회가 정략적 계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물러나면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으로 민주당이 더욱 지리멸렬해지고,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변의 설득이 먹혔다고 본다.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사퇴 철회를 결의한 데다 박원순 후보도 적극 만류하는 상황에서 사퇴를 고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 대표로서 체면은 구겼지만, 손 대표는 선제적으로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당내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었던 책임론을 잠재우는 효과를 결과적으로 거둔 셈이 됐다. 사실 손 대표가 당내 경선이 준비되기도 전에 박 후보에 입당 구애를 하고, 천정배 최고위원 등의 출마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번 사퇴 번복 파동을 거치면서 그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손 대표나 민주당이 처한 상황이 변한 것은 전혀 아니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하게 된 현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비난을 받아도 당 지지도가 20%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처지는 달라진 게 없다. 안철수 교수가 거명되자마자 지지도가 50%를 넘고, 당초 5%선에 머물던 박원순 변호사가 안 교수의 출마 포기 이후 곧바로 40~50% 선으로 치솟는 현상에서 민주당의 자리는 없었다.
손 대표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근본적 혁신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고 밝힌 대로 민주당은 본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에는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재야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새 인물들을 충원, 체질 개선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지도자도 없고, 부분적 수혈은 한계를 맞고 있다. 민주당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을 깨는 자세를 취해야 할 때가 왔다. 그 과정에서 인적 쇄신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과 지향점에 대한 토론도 치열하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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