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시장이 대외 충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사흘 간의 연휴를 마치고 4일 문을 연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장중 111포인트 폭락하고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30원까지 폭등했다.
최근 두 달간 대외 악재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시장이 출렁였던걸 감안하면, 이날 변동폭이 유독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글로벌 금융쇼크 때문이라지만 그간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국보다 반응속도가 더 빨랐고 등락폭은 더 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인데다, 외국인이 국내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3% 넘게 폭락하며 각각 1,706.19와 436.13에 장을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선 개장 6분 만에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환율은 장중 1,208.20원까지 치솟았다가, 결국 15.90원 오른 1,194.00원에 마감했다.
이처럼 높은 변동성은 미국 경제 둔화와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된 8월 이후 반복되고 있다. 최근 한달 만 보더라도 지수가 종가 기준 2% 이상 등락한 날이 10번이나 된다. 영업일(21일)의 절반이 요동쳤다는 얘기다. 환율도 10원 이상 등락한 날이 8번에 달한다.
LG경제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최근 두 달 새 코스피지수 낙폭(-20.7%)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아르헨티나(-24.6%)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달러 대비 통화가치 하락율은 -10.2%로 세계 여섯 번째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셈인데, 이처럼 우리 금융시장이 유독 위기에 취약한 것은 무엇보다 수출지향적인 경제기반 탓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재정위험이 크지 않다고 평가되는데도 금융시장에서는 공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경제 성장의 둔화→국내 수출업 위축'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해외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시장 개방성을 높인 것도 국내 시장을 요동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시장의 장벽이 낮으면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차익 실현 후에는 '먹튀'하기가 쉽고 위기 때마다 자금을 가장 먼저 빼내기 쉽다는 얘기도 된다.
예컨대 3월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 세계 증시는 추락했지만, 한국은 반사이익 기대감으로 외국인들이 적극 투자한 덕분에 지수 2,120선을 넘었다. 그런데 8월 초부터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자 유럽계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외국인이 오히려 국내 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외국인의 투자와 이탈에 따라 울고 우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이 3분의 1을 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증시 불안정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환율마저 요동치자 정부도 당황하는 모습이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환율 급등락이 심화할 경우 정부가 역할을 하겠다"며 시장 개입 의지를 내비쳤지만, 환율 급등세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대일 대우증권 선임연구원은 "우리 외환시장의 현물환 규모가 하루 거래량 기준 40억달러를 넘지 않기 때문에 적은 환전 물량에도 환율 변동폭이 커질 수 있다"며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 둔화 문제가 쉽게 해결될 성질이 아닌 만큼, 1,200원대를 뚫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증시 전망도 밝지는 않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가 의미 있는 저지선(1,600선)까지 내려왔으므로 앞으로 변동성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연말까지 1,600~1,700선에서 옆으로 기어가는 형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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