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람'으로 시작된 시민사회의 힘은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을 흔든 데 이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운명까지 좌우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손 대표는 4일 민주당의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야권 단일 후보 경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충격에다 손 대표의 사퇴 표명으로 지도체제가 흔들리는 등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 내부에서 "민주당은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거센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이번 사태가 야권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손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어제 경선 결과 박원순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됐지만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민주당 대표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라고 밝혔다고 이용섭 대변인이 전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손 대표 단독으로 책임질 일이 아니다"며 강하게 사퇴 의사 철회를 요구했지만 손 대표는 "나에게 맡겨 달라"며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가 이날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공지하자 한명숙 전 총리와 김진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중진들은 손 대표의 의원회관 사무실로 찾아가 2시간 가량 감금하다시피 하며 사퇴를 만류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5일 의원총회를 열어 손 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손 대표의 사퇴가 확정되면 당헌ㆍ당규에 따라 지난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정동영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하게 된다. 하지만 정세균 최고위원과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이인영 김영춘 최고위원이 동반 사퇴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져 민주당 지도체제가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정 최고위원에게 대표직을 넘기지 않고 비상대책위를 가동해 1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조기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 내부에서는 당의 혁신과 환골탈태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초선의 장세환 의원은 "민주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망 선고"라면서 쇄신과 개혁을 촉구했고, 4선의 이석현 의원도 "네 탓, 내 탓 공방으로 허송세월 하지 말고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혼란이 거듭되면서 야권 재편 가능성도 당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주도하는 '혁신과 통합'이나 제3의 세력이 나서서 민주당과 시민사회 세력을 아우르는 통합 신당 창당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곤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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