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9일 전세계 20억명이 TV생중계로 지켜본 영국 윌리엄 왕자 결혼식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에 도착한 신랑 신부가 빨갛게 물든 궁 광장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었다. 마치 버킹엄 궁전 광장을 레드 카펫으로 깔아놓은 듯 보였다.
아무리 세기의 결혼식이라 해도 저 넓은 광장을 어떻게 카펫으로 장식했을까. 하지만 카펫이 아니었다. 빨갛게 색칠된 아스팔트였다.
최근 들어 도로의 변신이 두드러지고 있다. 칙칙하고 어두운 색이 전부였던 도로에도 컬러 옷을 입히는 곳이 늘어났다. 콘크리트, 아스팔트에 '아트'요소의 재료를 가미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가장 각광받는 재료는 산화철 무기안료다. 산화철 무기안료는 철을 원료로 하되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든 안료로 수분 공기 햇볕에 변색되지 않아 적색, 황색, 검정색, 녹색, 노란색 등 자연에 가까운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컬러 콘크리트 뿐 아니라 플라스틱, 종이, 페인트 착색제로 사용되고 있다.
독일계 특수 화학업체인 랑세스코리아의 이신영 부장은 "콘크리트와 섞여 색을 내면 페인트처럼 도색을 여러 번 하지 않아도 영구히 유지되므로 보수 유지가 용이하다"면서 "중국, 인도,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영국 왕실이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했던 부분도 '버킹엄 궁전 주변 도로 보수 공사에 어떤 소재를 사용할 것인가'였다고 한다. 버킹엄 궁전 주변은 매일 워낙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탓에 도로의 마모와 균열이 심하기 때문. 일반 페인트로는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세기의 결혼식에 걸 맞는 색상 품질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왕실이 고민 끝에 선택한 제품이 랑세스의 산화철 무기안료 제품인 베이페록스103C붉은색 안료였다. 랑세스는 결혼식 이후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고 런던을 비롯한 영국 곳곳에서 아스팔트 착색제로 채택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또 세계 각국으로부터 제품 도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에선 아직 도로 공사에 도입되지 않았으나 국내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큰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랑세스가 지난 6월 서울에서 '제4회 색을 입은 콘크리트 포럼'을 개최한 후 국내 건축가, 엔지니어, 시공업체 등 관계자들이 제품 도입 문의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산화철 무기안료가 도로 포장에 적용된 것은 이제 시작 단계 이지만 건축물에는 상당히 많이 적용됐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커 시티 경기장과 파리의 에펠탑, 아부다비의 에미레이츠 팰리스 호텔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리움 삼성미술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 출판 단지 등에 사용됐으며, 현재 건축중인 다음 제주 본사 건물에도 적용됐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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