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60대이지만 목소리는 30대라고 자부해요. 노래 부를 때만큼은 온갖 서러움과 외로움을 잊지요."
1960~70년대 독일로 건너가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돼 고국을 찾았다.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이름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남녀 47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세계한인의 날(10월 5일)'을 맞아 5일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 타향살이의 애환을 노래한다.
60년대 초는 우리 정부가 서독 정부로부터 1억 5,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과정에서 지급보증해줄 다른 국가나 자체 재원이 없어 광부와 간호사를 대신 보내야 할 만큼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독일로 파견돼 탄광과 병원에서 일하며 월급의 70~80%를 조국에 보내야 했던 이들은 남모를 설움을 견뎌왔다. 77년 대학 졸업 직후 간호사로 파견됐다는 합창단원 이준아(60)씨는 "독일에 처음 가 줄을 서서 장을 보는데 내 차례인데도 상인이 나를 무시하고 뒷사람을 상대했고 항의해도 쳐다보지도 않은 기억이 생생하다"며 "피부색도 다르고 독일어도 서툰 동양인이라 무시한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독일인 체격에 맞춰 만들어진 광산은 전쟁통에 못 먹고 자란 한국 젊은이들에게 벅찬 일터였다. 학비를 벌려고 대학 중퇴 후 69년 독일로 간 박영래(67)씨는 "하루 18시간 일했는데 탄광에서 쓰는 기계가 너무 커서 다루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김명수(66)씨도 "점심으로 빵을 먹을 때마다 탄가루가 씹혔다"며 "밤마다 맥주와 돼지고기를 먹으며 몸 속 탄가루를 내보냈다"고 웃었다.
86년 10월 간호사 독일 파견 20주년을 맞아 간호사 8명으로 시작한 합창단은 이들에게 삶의 활력소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매주 월요일 두 시간씩 연습하는데 김정학(69)씨는 합창에 푹 빠져 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했다.그는 "합창으로 호흡을 맞추다 보면 외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파독 광부 출신은 아니지만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가 2006년부터 합창단을 지휘해온 김영식(50)씨도 "만리타향에서 숱한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화합이 잘 되고 전문가 못지 않게 합창 수준이 높다"고 거들었다.
합창단은 음악회에서 한성석 작곡의 가곡 '오늘'을 시작으로 90분간 '보리밭', '새타령'을 비롯한 우리 가곡과 민요를 부르고 '아리랑'으로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