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한 마리가 내 창문 밖 나무 가지로 날아들었다
이 까마귀는 테드 휴즈의 것도 갈 웨이의 것도
프로스트의 것도 파스테르나크의 것도 로르카의 것도 아니고
또한 전쟁터에서 피를 파먹는 호머의 까마귀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까마귀일 뿐
아무 곳에도 결코 아귀가 맞지 않는 삶
아무 것도 말할 만한 것이 없는 새일 뿐이다
잠시 가지에 머물렀다가
날렵하게 아름다운 몸짓을 지으며 날아갔다
내 인생 밖으로
* * *
레이먼드 카버는 괜찮은 소설가인가 봐요. 소설가 김연수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의 작품에 호감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같은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호감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그의 시를 몇 편 읽어보았는데 다 좋았습니다. 조금 심술이 납니다. 소설도 괜찮은데 시까지 잘 쓰다니… 그의 재능을 생각하니 정말 내 삶은 '아무 곳에도 결코 아귀가 맞지 않는 삶'이고 나는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는 새'일 뿐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렇지만 테드 휴즈와 갈 웨이와 프로스트와 파스테르나크와 로르카, 세상의 멋진 시인이란 시인은 다 찾아 읽으며 자기는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다고 느꼈을 그의 청춘의 숱한 나날들을 생각해봅니다. 아무 것도 말한 만한 것이 없는 나의 새가 잠시 가지에 머물렀다가 날아오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오겠지요. 말할 만한 것이 없이도 인생은 멋진 것인지 모릅니다. 그 새의 아름다움을 미처 발견하기도 전에 내 인생 밖으로 날아가버린 것인지도 모르지요. 나의 청춘처럼.
레이먼드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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