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문자, 그 이후' 5일 개막/ 옛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문자로 떠나는 고대 여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문자, 그 이후' 5일 개막/ 옛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문자로 떠나는 고대 여행

입력
2011.10.04 11:23
0 0

박물관에 가는 큰 재미 중 하나는 오래된 유물에서 그 시절 사람들 냄새를 맡는 것이다. 세월의 더께에 희미해진 옛 자취를 상상력을 보태어 더듬다 보면, 둥두렷이 떠오는 그림이 흥미롭다.

국립중앙박물관이 5일 개막하는 기획전 '문자, 그 이후'는 한국의 고대 문자 자료를 통해 아득한 옛날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다. 고조선이 중국과 교류하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문자가 어떻게 쓰이고 발전했는지 살피면서 옛사람의 삶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국내 문자자료전으로는 가장 많은 500여점을 한데 모았다. 돌, 나무, 토기, 벽돌, 기와, 종이, 금속판 등에 문자를 쓰거나 새긴 유물들이다. 문자의 쓰임새에 따라 통치, 생활, 사상의 세 부분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처음에는 커다란 돌에 법령을 새기는 등 통치에 주로 쓰이다가 점차 생활 속으로 파고 들고, 마침내 책의 형태로 사상을 담는 그릇이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문자가 널리 쓰이기 전, 삼한의 수장들이 낙랑에 가서 위세품으로 받아온 청동도장 등 문자 도입 초기의 유물들도 나왔다.

옛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코너는 생활 속의 문자다. 특히 한 뼘 길이 작은 목간(나뭇조각)에 적힌 소소한 사연들이 재미있다. 1,400년 전 백제의 누군가는 비아그라가 몹시 아쉬웠는지 남근 모양으로 깎은 목간에 '서라, 서라, 서라' 하고 세 번 써 놓고 빌었다. 백제의 말단 관리가 쓴 목간에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 음지에서 고생만 하고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는구나"라는 신세 한탄이, 신라 관리가 남긴 목간에는 글씨 연습을 하다가 낙서한 얼굴 그림이 보인다. 봄과 여름에 나라에서 벼를 빌려 주고 가을 추수 때 5할(또는 3할) 이자를 붙여 받았다는 내용의 백제 목간은 고리대에 시달렸을 백성의 눈물을 짐작케 한다. 경주 안압지에서 나온 목간에는 한약재 11종을 적어둔 처방전, 궁중에서 먹은 음식 종류를 써놓은 것도 있다. 공부와 인격 수양에 힘쓰자는 굳은 맹세를 돌에 새긴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ㆍ보물 1411호)의 두 신라 화랑은 그 뒤 어떻게 살았을까.

흰 종이에 먹으로 쓴 대방광불화엄경(국보 196호) 말미에는 지극한 불심으로 사경(寫經)에 임하던 정성을 보여주는 글이 남아 있다. 사경을 할 때는 먼저 보살계를 받아 마음을 가다듬고, 변소를 다녀오거나 잠 잔 뒤, 밥 먹은 뒤에 향수로 몸을 씻고, 사경하러 가는 길에 동자들이 꽃과 향을 뿌리며 앞장서고 악사와 범패 행렬이 따랐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라니경'(국보 126호), '연가 7년'이라고 제작 시기가 새겨진 고구려 금동불상(국보 119호) 등 국보급 여러 점 외에 일본 역사민속박물관에서 빌려온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원석 탁본, 신라 촌락 문서 등도 볼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광개토왕비 원석 탁본이다. 광개토대왕비는 받침돌을 빼고 글자를 새긴 몸통 높이만도 4.63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그런데 비석 표면이 많이 닳아서 탁본을 해도 글자가 잘 보이지 않자, 석회를 발라서 글자가 도드라지게 한 다음 탁본하는 방법이 나왔다. 광개토대왕비 석회 탁본은 청나라 말 중국에 간 조선인들이 빼놓지 않고 사오는 인기 품목이었다고 한다. 석회 탁본을 하면 원석의 글자가 일부 변형되기도 하기 때문에 학문적 연구에는 원석 탁본이 더 가치가 있다. 현재 광개토대왕비 원석 탁본은 한국에 1점을 포함해 10점 가량 있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일본 소장본은 그 중 가장 탁본이 잘 된 것이다. 워낙 거대한 비석이다 보니 탁본이 방 하나를 온통 차지했다. 비석의 앞, 뒤, 좌우 4개면 원석 탁본이 벽 하나를 꽉 채웠고, 석회 탁본은 그 앞 유리 진열장 안에 눕혀 놓았다. 전시는 11월 27일까지.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