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법 입법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1차적으로 국회에 책임이 있지만,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수수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격랑에 휩싸인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외면한 채 종합편성(종편) 채널의 독자 광고영업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3월 연임 확정 이후 "가능한대로 광고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대책 없는 낙관론을 펼치더니, 6월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는 "종편이라는 아기가 걸음마를 할 때까지 보살펴줘야 한다"며 종편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지난달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미디어렙법 관련 방통위의 입장이 없다는 지적에 "현재 종편에 관련된 광고영업이 자율로 보장된 것을 다른 기관 규제의 틀 속에 넣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뜻을 충분히 밝혔다"며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 위원장의 주장은 현행 방송관계법상 종편은 케이블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와 마찬가지로 미디어렙을 통한 광고 판매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 법'을 강조하는 그의 논리대로라면 MBC와 SBS의 독자 영업을 막을 이유도 없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지상파 광고영업 독점대행 체제는 2008년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졌고, 대체입법 시한인 2009년 12월을 훌쩍 넘긴 채 현재는 사실상 무법상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주장은 방통위원간 의견 조율도 거치지 않은 '사견'에 불과하다. 방통위 수장이 대책 마련에는 손 놓고 종편 편들기에만 급급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 위원장이 그나마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광고시장 파이 키우기. 광고 시장 규모를 201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으로 늘려 과당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비현실적인 전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2008년 기준 선진국들의 GDP 대비 광고비 비중은 미국이 1.18%, 영국 0.87%, 일본 0.90%, 프랑스 0.52%다. 우리는 현재 0.82%로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광고가 GDP 규모보다는 내수 규모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코바코는 올해 1월 '종편 선정에 따른 방송광고시장 경쟁도입에 대한 의견' 보고서에서 "경제성장과 광고비 증가가 비례하지 않는 이유는 내수 및 경공업 부문에서 광고활동 비중이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광고 시장을 키울 묘책이 없다 보니 방통위는 올해 초 의약품 광고확대, 간접광고와 제작협찬 규제 완화, 중간광고 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한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의약품 광고 완화 허용 등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안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데, 방통위가 종편 밀어주기를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최종원 의원은 지난달 국감에서 "제약사 매출 상위 40대 기업 가운데 11곳이 종편이나 보도전문채널에 투자했다"고 공개해 방통위가 종편 사업자와 제약회사의 밀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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