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고 있다. 야권의 서울시장 단일 후보 선거가 끝난 지금 이런 현상은 더욱 확연해졌다. 기성 정치가 구(舊) 정치가 되고 새로운 물결이 신(新) 정치로 여겨지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2004년 4월 원내 제2당으로 밀려난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직후에도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다.
수도 서울을 놓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일부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한 '진보-민주화-시민세력' 연합군과 한나라당이 일합을 겨루는 것이니, 한나라당으로선 버거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그나마도 이는 표면적인 대결 구도다. 실제로는 변혁을 바라는 시민세력과의 싸움이나 다름 없다.
당의 위기는 당원 모두의 위기다. 당내의 유력한 대선주자라면 누구보다 더욱 속타는 심정일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지원조차도 나갈 둥 말 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예 나서지 않으려는 명분을 찾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물론 평소에는 나 몰라라 하다가 급한 상황이 닥쳐서야 박 전 대표를 애타게 찾느냐는 지적에는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볼멘소리를 한가하게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야권 단일 후보인 박원순 변호사가 선거에서 이기면 이는 제3의 정치 세력이 본격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유권자의 마음은 더욱 빨리 변화하게 되고 정치권에 대한 주문도 더욱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대선의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깜짝 등장' 한방으로 지지율이 역전되는 경험도 해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동굴 속에 웅크리며 부자 몸조심할 때가 아니다. 등장의 효과를 극대화할 적절한 타이밍이나 찾고 있을 때도 아니며 박 전 대표가 강조하던 원칙이나 조건을 따지고 있을 때는 더더욱 아니다.
일부에서는 정책적 지향점도 다른 나경원 후보를 돕는 선거에 나섰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박근혜 대세론'에 흠집이 난다고 말리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귀한 상품일수록 늦게 뚜껑을 여는 것이 낫다는 논리에서다. 이들에게 지금 밖에서 일고 있는 변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묻고 싶다.
'원칙 고수'를 명분으로 내건 박 전 대표의 요즘 움직임은 소통 부재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만의 원칙을 고집한다면 그건 독선이고 아집이다.
안 원장이 등장하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위협하고, 박 변호사가 선거의 최일선에 나선 상황이라면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대선 레이스의 막은 사실상 올라간 셈이다.
2004년 천막 당사 시절의 박 전 대표는 당을 위해 국민 속에서 전국을 누볐다. 국민은 그런 진정성에 감동을 느낀다. 그곳에서 박수가 나오고, 그런 것이 모여 또 다른 세력을 결집시키는 단초가 된다.
시장 선거를 위해 약수터와 재래시장, 대학가 강연 등을 가리지 않고 다니며 그들에게 진정으로 이해를 구할 때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약자가 강자가 됐을 때 구경꾼의 환호는 멈춘다. 강자가 되는 순간 그때까지 성원해 준 사람들은 또 다른 약자에게로 돌아선다. 박수 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운동화를 꺼내 들 때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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