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내, 참 불우하다.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와는 이혼하고 어린 아들과 딸을 빈민가에서 기른다. 직업도 변변치 않다. 밀입국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브로커로 근근이 살아간다. 신이 그에게 준 재능은 혼령들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 하나. 그는 섬뜩하기도 한 그 특별한 능력으로 간혹 용돈벌이를 한다.
불우한 삶이지만 그는 근면하고 아이들 가정 교육도 엄격히 하는 편이다. 현실에 순응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신은 최후 통첩 같은 불행을 안긴다. 느닷없는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아이들을 남긴 채 삶을 마감해야 한다. 가혹한 인생이다.
영화 '비우티풀'은 단조의 음률이 시종 스크린을 관통한다. 처연하고 슬픈 장면이 내내 이어진다. 그 장면들이 조금씩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결국 눈물을 쏟게 만든다. 아이들을 위해 악착 같이 돈을 모으다 큰 참사와 마주하게 되는 주인공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 가족과 재결합하고 싶지만 우울증이란 장벽을 넘지 못하는 그의 아내 마람브라(마리셀 알바레즈), 명품 가게 앞에서 짝퉁 제품을 팔다 경찰에 잡히는 아프리카 밀입국자들…. 등장인물들은 각자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 카메라는 끝내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외면한다.
하지만 영화는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서글픈 정서로 가득하나 종국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삶의 마무리에 최선을 다한 욱스발이 자신보다 젊은 아버지의 영혼과 만나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명징한 메시지를 남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대끼는 삶, 그래도 한번 살만한 것 아니냐고.
영어제목 'Biutiful'은 욱스발의 어린 딸이 '아름다운'의 영어 철자(Beautiful)를 소리 나는 대로 쓰다가 만들어낸 오자다. 어쩌면 꾸밈없이 묘사된 인생은 그렇게 잘못 쓴 철자처럼 아름답지 못하지만, 또한 아름다움과 그리 거리가 먼 게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제목처럼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배경은 바르셀로나.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하지만 영화는 관광엽서 같은 풍경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화면은 회색에 가깝고, 뒷골목 처절한 삶의 모습들로 점철된다. 요컨대 '비우티풀'은 아름다운 도시에서 아름답지 않은 인생들을 비추며 그래도 결국 삶은 아름답다고 외치는 지독한 모순의 영화인 셈이다.
실룩거리는 표정 하나만으로도 폭풍 같은 감정을 불러내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는 지난해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받았다. 감독은 알렉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아모레스 페로스'(2000)와 '21그램(2003), '바벨'(2006) 등으로 이름을 알린 멕시코의 대가다. 1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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