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7일 오후 7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한 카지노에서 50대 중반의 사내가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를 기다리던 한 신사와 인사를 나눈 후 정차 중이던 푸조604에 올라탄 사내는 운전자를 힐끗 바라보더니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초조한 눈 빛이었다. 개선문 로터리를 지난 승용차가 외곽 순환도로로 향하자 갑자기 뒤 좌석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사내의 목을 수 차례 가격하기 시작했다. 실신한 사내를 태운 승용차는 파리 시내를 빠져 나와 인적이 드문 숲에 멈추어 섰고 차에서 내린 두 명의 외국인은 실신한 사내의 양 팔을 끼고 어둠이 짙은 숲 속으로 향했다. 운전자가 차 안에서 기다리던 30여 분 사이, 그들은 소음기가 달린 구 소련제 권총을 사내의 머리에 겨누고 총알 7발을 발사했다. 사내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범행을 마친 외국인 둘은 시신을 낙엽으로 은폐한 후 버버리 코트와 여권, 지갑과 벨트를 회수해 운전자에게 전달했다.
차가운 이국 땅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중년의 사내는 한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고 권력자였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2005년 5월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여러 억측이 난무했던 그의 실종사건 윤곽을 발표했다.
63년 7월부터 중정부장으로 재직했던 김형욱이 69년 해임뒤 유정회 국회의원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73년 미국으로 망명해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며 치부를 고발하는 회고록을 발표했다. 이에 분개한 청와대의 의중을 살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파리 주재 중정 직원들을 동원해 김형욱을 암살, 실종 처리했다는 것이다.
진실위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종은 아직까지 그 실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파리 근교에서 살해 후 양계장 분쇄기로 처리했다는 설도 있고 센 강에 버려졌다거나 서울로 납치 후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됐다는 주장도 떠돌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권력을 누린 이가 권력에 의해 살해된 사실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91년 서울가정법원이 김형욱에게 실종 선고를 내려 그는 법적으로 10월 7일 사망 처리됐지만, 그의 실종은 아직까지 한국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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