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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도가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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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도가니'의 힘

입력
2011.10.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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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한다. 선은 악을 물리치고, 진실이 승리하며,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이뤄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구의 평화도 끝내 지켜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는 해피 엔딩을 선택한다. 달콤한 판타지, 거짓이라 해도 사람들은 영화가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바라고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마 잠시 착각에 빠져보고 싶어한다. 그 환상은 인도의 발리우드에서 보듯 자신의 처지가 비참할수록, 현실이 모순투성일수록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이창동 감독은 그것이야말로'당의정'일 뿐이라며 싫어했다.

■ 조금도 후련하지 않다. 거짓말, 당의정이라도 좋으니 마지막에는 정의가 승리하는 통쾌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관객들의 기대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영화라고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사회의 악, 그 악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 현실까지 함부로 바꿀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또 하나의 범죄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법정에서 소리 없이 울부짖는 청각장애아들과 마찬가지로 처절하고, 암담하다. 영화의 무대가 된 무진의 안개처럼 눈앞이 뿌옇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모두 말한다. <도가니> 는 판타지가 아니라, 부끄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 그 현실은 6년 전 처음 세상에 알려진 광주의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인화학교 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었다. <도가니> 가 보여주려는 것은 청소년관람불가의 끔찍함, 폭력적인 교장과 교사의 인면수심만이 아니다. 사실을 외면한 법과 교육과 사회 모두에 대한 반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사건 전모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영화의 원작 공지영 소설로도 충분했다. 사민사회단체들은 사건의 재조사 서명운동을 벌이고, 교육당국은 폐교를 검토하고, 국회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와 판사까지 반성과 해명에 나서고 있다.

■ 만약 영화 <도가니> 가 나오지 않았다면 2년 전 소설에서 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화학교 사건은 십중팔구 그대로 묻히고 잊혔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때로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된다. 영화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기도 하다. 영화로까지 이야기해야만 비로소 모두 화들짝 놀라 허둥대며 반성하고 고치는 사회는 후진국이다. 오로지 영화 속의 인화학교 사건 하나에만 냄비 끓듯이 매달려 놓고는, 마치 근본까지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거나 위안을 삼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얄팍한 카타르시스이다. <도가니> 역시 그것을 위해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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