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다.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재잘재잘 그 친구 얘기가 부쩍 늘었다. "엄마, 오늘은 무슨 놀이 같이 했는지 얘기해줄까?" "다른 친구들보다 더더더더 많이 좋아" "나중에 열 살 이십 살만큼 크면 결혼할 꺼야" 그런다. 퇴근하고 와서 아이와 마주앉아 이런 얘길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온다. 어린이집에서 단짝으로 지내는 다른 남자친구 이름을 대며 "그 친구랑은 결혼 안 해? 서운해하지 않을까?" 그랬더니, "엄마는 무슨, 내가 남잔데, 남자랑은 결혼 안 하고 놀기만 할 거야" 한다. 함께 듣고 있던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빵 터지신다.
조그만 녀석이 벌써부터 여자친구네 하고 웃어 넘겼는데, 생각보다 오래 간다. 이 녀석이 진짜 좋아하나 보다 싶다가도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43개월짜리가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이 발달이 되긴 했을까 긴가민가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사랑은 뇌의 화학작용이다. 과학자들은 뇌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나오느냐에 따라 사랑이 3단계로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처음 상대에게 호감을 느낄 때는 뇌에서 도파민이 나온다. 도파민은 상대를 그냥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게 만든다. 다음은 페닐에틸아민과 엔도르핀이 분비될 차례다. 이땐 밤낮으로 온통 사랑하는 사람 생각뿐이라 마치 홀린 듯한 느낌에 빠지고, 상대를 안고 싶어진다. 사랑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오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서로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준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처럼 말이다.
이들 물질이 분비되는 곳은 뇌 한가운데에 있는 변연계다. 감정이나 정서, 본능 등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변연계는 뇌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영역 중 하나"라며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바로 발달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네 살짜리 아이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만 3세 정도부터는 사랑의 본능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표현할 줄 알게 되면서 함께 있고 싶다 하고, 만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이성 부모에게 이 같은 표현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가 아빠보다 유독 나한테 안아달라 하고, 뽀뽀하자 하는 게 다 이유가 있구나 싶다.
사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사랑은 사랑의 3단계 중 마지막 단계에 가깝단다. 모성애를 만드는 건 그러니까 옥시토신이다. 아이가 자라 좋은 사람과 1, 2단계 사랑을 경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마음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 20년쯤 남았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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