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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텅 빈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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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텅 빈 우정

입력
2011.10.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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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우연에 대하여

먼 훗날 더 먼 훗날을 문득 떠올리게 될 것처럼

나는 대체로 무관심하답니다.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입술이 하염없이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신비로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날.

내일은 진동과 집중이 한꺼번에 멈추는 날.

그다음 날은 침묵이 마침내 신이 되는 날.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날 것입니다.

* * *

우리는 노예처럼 사랑할 수 있고 폭군처럼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정은 다릅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그대는 노예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대는 폭군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친구를 가질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가끔 아이도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친구와 아이를 만드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우정은 사랑만큼 조밀하지도 않고 뜨거운 결실도 없습니다. 사랑은 끝난 뒤에도 정념들을 남깁니다. 검은 꿀이 잔뜩 묻은 입가와 같다고나 할까요. 달콤해서 쓰고, 써서 닦았는데 끈적거립니다.

우정은 다르죠. 니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친구였다. 그리고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래요.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구에서 만난 두 척의 배처럼 잠시 곁에 머물며 영혼의 수하물들을 나눕니다. 그리고 다른 대양을 향해 거리낌 없이 떠나갑니다. 먼 후일 다른 바다와 다른 항구에서 우린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사랑은 늘 부러워합니다. 공기처럼 자유로운 우정의 이 가벼운 떨림을. 시인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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