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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슬램 덩크로 본 워싱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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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슬램 덩크로 본 워싱턴 정치

입력
2011.10.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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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논란 가운데 슬램 덩크(Slam Dunk)가 있다. 이라크 전쟁의 책임을 피하려는 권력 이면의 다툼을 말하는데 이 논란에는 대통령, 부통령, 중앙정보국(CIA) 국장, 그리고 스타 기자가 등장한다. 흥미 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이 최근 출간한 자서전 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잠잠하던 논란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논란의 최대 수혜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또 다른 논란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전쟁 책임론과 직결된 슬램 덩크

'덩크슛처럼 확실하다'는 뜻인 슬램 덩크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결심토록 만든 단어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전쟁 3개월 전인 2002년 12월 2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CIA 보고가 진행된다. 보고가 신통치 않자 부시가 한마디 했고 조지 테닛 당시 CIA 국장은 "슬램 덩크"라고 말했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대목이 진위 논란으로 번진 것은 이라크 전쟁의 책임론과 직결된 탓이었다. 당사자 테닛의 설명으로는 부시가 "추가할 첩보가 있느냐"고 묻길래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다는 뜻에서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슬램 덩크"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런 의도와 다르게 슬램 덩크를 재해석해 논란을 유도한 이는 워터게이트를 터뜨린 대기자 밥 우드워드였다. 우드워드는 2004년 초 펴낸 에서 부시가 "WMD에 대해 지금까지 보다 더 좋은 정보가 있느냐"고 묻자 테닛이 두 팔을 뻗어 공을 던지는 시늉까지 하면서 "예, 그것은 슬램 덩크 입니다"라고 두 번씩이나 답했다고 적었다. 이라크에서 WMD가 발견되지 않아 책임론이 비등하던 차에 우드워드의 폭로가 여론에 불을 지른 것은 당연했다. 테닛은 정보 실패의 책임을 지고 CIA를 떠나야 했고, 슬램 덩크는 9ㆍ11테러에 이은 CIA의 불명예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았다.

억울해 하던 테닛은 3년 뒤 회고록 를 통해 명예회복을 시도했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체니 진영이 우드워드를 동원해 전쟁 책임을 CIA로 돌리는 과정에서 슬램 덩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사실 체니는 9ㆍ11 사건 초기부터 이라크 전쟁을 주장한 강경파여서 그럴 정황은 충분했다. 테닛은 또 사실 확인 없이 내부 정보에 의존한 우드워드의 책이 속죄양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됐다며, 우드워드에게 "헛소리 마"라고 했다.

워싱턴 정치 들여다보기

그런데 공교롭게도 체니는 이번 자서전에서 우드워드가 묘사했던 당시 부시의 질문, 테닛의 답변을 거의 똑같이 기술하고 있다. 체니는 부시가 "이라크 WMD에 대한 더 좋은 증거가 있느냐"고 묻자 테닛이 "슬램덩크"를 연발했다고 기록해 테닛의 아부를 은연중 시사하기도 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런 체니의 장면 묘사가, 지난해 부시가 회고록 에서 말한 것과도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부시는 "사담 후세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네"라고 말하자 테닛이 "슬램 덩크"란 말로 동의했다고 썼다. 이쯤 되면 테닛이 아닌 제3자가 보더라도 체니와 우드워드의 커넉션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또 테닛을 겨냥했을 체니의 묘사와 기술이, 의도와 달리 우드워드에게 화살을 날린 격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슬램 덩크가 워싱턴 정치를 들여다보는 덩크슛이 되는 듯하다.

이태규 워싱턴 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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