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억새와 갈대를 혼돈하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억새는 산이나 들에 피고 갈대는 물에서 무리를 이뤄 핀다는 것쯤은 국민상식이 되었습니다. 둘 다 벼과의 1년생 풀이어서 꽃이 일고 풍화하는데 어디에든 그 모습이 장관인 시월입니다. 억새와 갈대는 철학자와 예술가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프랑스의 파스칼은 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우리나라에서도 시인이라면 이들을 두고 다들 시 한 편씩을 남겼습니다. 제가 사는 울산시 울주군에는 해발 1,000m 이상의 높이를 가진 '영남 알프스'의 산군이 펼쳐져 흘러가는데 지금 그 곳은 바야흐로 억새의 계절입니다.
억새가 쓰는 위대한 서사시를 읽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릅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어제는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의 간월재에서 억새를 배경으로 임동창의 '울주 오디세이'라는 억새 음악회가 펼쳐졌습니다. 수천의 관중이 모여 임동창의 흥겨운 피아노 연주에 사람과 억새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북쪽 철원에는 첫 얼음이 얼고 대관령에는 단풍이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그 단풍이 이곳까지 남하하는 동안 그 자리에 억새가 일어 은빛으로 빛나며 가을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하마 순천만에도 갈대꽃이 일었을 것입니다. '으악새 슬피 우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이 자주 흥얼거려집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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