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좀 아깝다. 2008년부터 시작해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세계인의 눈길을 끈 스탄 형제(더그, 마이크 스탄)의 '대나무' 연작은 그가 2004년부터 계속해온 '숲'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가 부활의 의미를 담아서 1996년에 시작한 '서랍' 연작은 뉴올리언즈의 비영리예술가 재나 나폴리가 2007년에 의미까지 똑같이 베낀 작품을 뉴욕의 월드파이낸셜센터에서 전시하면서 복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한국인으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번째로 미국조각가협회가 펴내는 권위있는 미술전문지 '조각(Sculpture)'의 표지(2003년 9월호)를 장식했던 재미 설치미술가 조숙진(51)씨. 현대미술의 메카 미국 뉴욕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도 '세계적 작가'라는 호칭을 낯설어 하고, 상품성이 예술을 좌우하는 시대에 팔리는 작품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새롭게 영감을 주는 작품을 추구한다는 그를 만났다.
_ 전시회 때문에 오셨나요?
"이달 말까지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제 '의자' 연작이 초대됐어요. 오래된 의자 80개가 벽을 향해 앉아있는 것입니다. '의자' 연작은 2009년에 서울대미술관에서 70개로 처음 선보이고 작년에 뉴욕에서 110개로 전시를 했어요. 의자는 전부 뉴욕의 거리에서 주운 것인데 모양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아주 낡은 모습이 오래된 시절을 기억하게 하지요."
_ 늘 주운 나무들로 작업을 한다고요?
"1999년 뉴욕의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에서 했던 '삶의 색채'라는 작업에는 오렌지 원액용 드럼통 70개를 재활용 매장에서 사서 썼어요. 이 드럼통의 바닥을 뚫고 용접으로 두 개를 이으면 사람이 누울 길이가 되거든요. 그렇게 만든 35개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어요. 일종의 퍼포먼스로 음악 연주와 함께 공원에 모인 사람들에게 통 안에 들어가 죽는 순간을 생각해보게 했는데 어떤 대학생은 울고, 에이즈 환자 한 명은 강에 누워있듯 편안함을 느꼈다고 하고, 어린이들은 깔깔거리고 좋아하고. 죽음과 그 너머의 삶이라는 것이 제게는 꽤 중요한 주제입니다. 누구나 죽음에 직면하면 또다른 넓은 시야를 경험하게 되잖아요. 이거 외에는 거의 다 주운 나무로 하는 거 맞습니다."
_ 재료값은 안 들겠네요.(웃음) 나무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대학은 가정교육과를 나왔어요. 대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는데 3학년 때인가 전시회를 가졌어요. 그때 저희를 지도했던 미술강사분이 제 정물화를 보더니 '너는 미술을 하지 않으면 하느님한테 죄짓는 거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단식투쟁 끝에 홍익대 대학원으로 그림을 공부하러 갔어요. 전공은 비구상회화였는데 캔버스 살 돈이 없어서 값이 싼 하드보드나 합판을 구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합판은 캔버스와 달리 물감을 칠하면 색이 얹어지는 게 아니라 스며들거든요. 그게 어찌 보면 동양화 같거든요. 당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차별, 그림과 조각에 대한 엄격한 분리, 여자는 예쁜 것을 하라는 편견을 다 뒤집어 새롭게 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했어요. 합판은 그림도 되고 오려 붙이면 형태도 구성하고. 박서보 교수님은 '이건 (캔버스보다) 좋은 재료가 아니다'라고 나무라시는데 저는 그 말씀을 듣고는 '음, 아무도 이런 소재는 안 썼다는 이야기구나' 하면서 자신을 가졌어요. 그때 최명영 교수님이 '뭔가 나오겠는데' 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작가라는 건 자기만의 언어를 가져야 하는데 아무도 안 쓴 소재를 제가 발견했다면 좋은 거지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 동안 주워온 나무판을 칠하고 변형시켜서 오브제에 가까운 비구상 회화 작업을 했어요. 1986년에 관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더니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 이듬해 일본 도쿄에서 한국현대작가전시회를 갖는 데도 포함됐고요."
_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일본에 갔을 때 교토 시립미술관인가 현대미술관에서 마침 조나단 보롭스키(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앞에 있는 '망치 든 사람'을 만든 조각가. 조숙진은 미국에서 2007년에 나온 이라는 책에 보롭스키와 함께 선정된 45명 중 한 명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어요. 드로잉부터 조각까지 모든 작품을 망라했는데 저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아이디어로만 갖고 있던 것을 그는 만들었더라구요. 미국으로 가야겠다, 그래서 1988년에 뉴욕에 있는 프랫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_ 미국에서 교육받으면서 무엇에 새롭게 눈뜨게 되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작품 만들어서 토론하는 수업은 여기나 비슷했어요. 제가 미국으로 간 것이 뭘 배우러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_ 아하, 작》關?자질은 충분한데 그걸 작품으로 나오게 지원해줄 시스템을 찾으러 간 거라, 이 말씀?
"그렇지요.(웃음)"
_ 성공했나요?
"처음에는 말도 못하게 고생했어요.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한국에서 만들었던 작품의 슬라이드를 들고 뉴욕에 있는 오케이해리스 화랑에 갔어요. 이 화랑이 뉴욕의 전설적인 화상 레오 카스텔리의 화랑에서 일했던 아이반 카프가 연 것이라 1990년대까지 명성이 높았지요. 작품을 보더니 제 작업실을 보고 싶대요. 한 달 후에 보자고 하고 열심히 만들었지요. 한 달 뒤에 카프가 와서 제 작품을 보더니 전시회를 열어줬어요. 1990년에 열린 개인전에서 아홉 점 가운데 석 점이 팔리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_ 그 후로는 작품할 돈도 생겼을텐데 여전히 길에서 주운 나무로 작품을 계속했어요.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 예술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물뿐 아니라 장소도 그래요. 2006년에 인도 뉴델리의 글로벌아트빌리지에 '명상의 집'을 만들 때는 공원을 돌아다녔더니 쓰레기가 버려진 곳이 있었어요. '여기가 내 장소다' 그랬어요. 불가촉천민인 일꾼들과 그곳에 아주 흔하게 버려지는 대나무를 모아서 명상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후로 그곳이 아주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고 해요. 쓰레기나 버리던 공간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 의해 가장 거룩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 특별하잖아요. 창틀이나 문짝이나 서랍, 의자처럼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낸 것에는 어떤 인간성 같은 것도 느껴져요."
_ 버려진 나무들로 만드는 것으로는 '숲' 연작이 제일 유명하지요?
"2004년에 폴란드 우쯔비엔날레에 초대받아 갔을 때 주제가 '건설비 가계정'(Construction in Process)이었어요. 과거 공장이던 곳에서 전시회가 열렸는데 주변에 버려진 산업목이 많아서 이걸 버려진 자연목과 함께 얽어서 숲을 꾸몄어요. 어렸을 때 숲에서 나무 사이로 하늘을 보던 느낌, 오래된 교회나 성당이나 절을 찾았을 때처럼 편안하고 거룩한 느낌, 그걸 재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그 사이로 들어가 평화의 퍼포먼스를 했어요. 태풍 카트리나가 온 해에 뉴욕에서 열었을 때는 사람들이 그 '숲'에 들어가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올해까지 모두 10번 '숲'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매우 약해 보이지만 나무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세상에 대한 비유 같지 않나요? 올해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헌팅턴미술관과 스위스 바젤 인근의 차펠리라는 곳에서도 만들었습니다."
_ '숲' 연작은 모두 현지에서 주운 나무들로 하는 건가요?
"네. 스위스는 워낙 깨끗한 곳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차펠리 사람들이 전시회를 보더니 우리 마을에 버려진 게 저렇게 많았느냐고 놀라더군요. 헌팅턴미술관에서 할 때는 조수가 트럭운전을 하던 사람인데, 제가 엄청나게 큰 쓰레기장을 발견했더니 '내가 4년을 다녀도 못 보던 곳이 어떻게 당신 눈에는 보이느냐'고 놀라워했고요."
_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지요?
"현지에서 조수와 자원봉사자를 붙여주지요. 그들에게 작품설계를 일러주고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보게도 해요. 자원봉사자 가운데는 의사 변호사 건축가도 있는데 뜻밖에도 건축가가 제일 힘들어해요. 도면이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냥 내버려뒀더니 이틀만에 방법을 깨우치더군요.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며 건축 수업에 꼭 한번 도입해보겠다고 했어요."
_ 여러 나라에서 작업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나라라면?
"브라질 바히아주에 이타파리카라는 작은 섬이 있어요. 미국인 건축가가 만든 사카타예술재단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따라 2001년에 석 달을 살았는데, 너무 잘해주니까 뭔가 보답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곳 학생들과 학교 벽에 벽화를 만들었어요.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와 조개껍질을 모아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벽으로 옮겼더니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헤어질 때는 모두 울고. 굉장히 낙후된 지역인데 이 벽화가 계기가 되어서 기 죽어 있던 아이들이 굉장히 밝아졌다고 교장 선생님이 편지까지 하셨어요. 브라질에는 아픈 부위를 만들어서 성당에 바치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대요. 그걸 엑스보토라고 하는데, 어느 날 섬에서 가까운 도시의 성당에 갔더니 고무로 만든 팔, 손, 이만한 다리, 심지어 심장도 있는 거예요.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2002년에 그때 경험을 살려서 한국의 오래된 나무장식을 모아 '성당/코리안 엑스보토'라는 작품을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였어요. 미국의 '조각'지 표지로 실린 것도 바로 이 작품입니다."
_ 작품은 많이 팔렸습니까?
"먹고 살 만은 해요.(웃음) 미국의 현대미술 컬렉터로 유명한 마틴 마길리즈도 소장하고 있고 코네티컷의 후사토닉미술관, 펜실베이니아의 에리미술관, 뉴욕의 스톤쿼??조각공원에도 있고요. 한국에도 물론. 미국 LA경찰서 옆의 구치소 건물 앞에 세워진 '기원의 종'은 108개의 종에 인간의 번뇌를 담아 다 흘려버리자는 뜻으로 만든 것이라 아주 유명한 공공미술품이 되었고요. 그런데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처럼 잘 팔리는 작가들은 작품 구상을 하는 아이디어 뱅크가 따로 있고, 작품을 만들어주는 조수들이 따로 있어요. 작가의 역할은 선택하는 것뿐이지요. 그런 게 작가일까요? 그런 게 예술일까요? 시장의 요구에 따라 만드는 것은 상품입니다. 예술이란 궁핍한 처지에 있더라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일이잖아요. 예술가부터 돈과는 무관한, 자기표현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지요."
_ 음악가들한테 영감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면서요. 이상은씨나….
"아, 이상은씨가 자신을 아이돌에서 뮤지션으로 바꾼 사람이 나라고 방송 인터뷰에 나와서 그랬다고.(웃음) 클라리넷 연주자이기도 한 작곡가 데릭 버멜도 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뭔가를 하자고 하네요."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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