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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불평등에 저항하는 월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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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불평등에 저항하는 월가 시위

입력
2011.10.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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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의 월가를 미국, 나아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고 흔히 부른다. 뉴욕증권거래소를 비롯해 투자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가 집결해 있고 이들이 전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규모의 금융상품을 개발, 판매하는 것을 보면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월가는 세계 경제에 미치는 큰 영향력 때문에 늘 주목을 받는다.

지금 이 시각 월가는 또 다른 이유로 전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9월 17일 '월가를 점령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시위가 2주 이상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대의 주된 구호는 금융산업의 탐욕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월가는 부패하고 쉽게 돈을 벌며 정부의 혜택을 받는, 불평등한 사회의 상징 같은 존재다. 그래서 시위대는 금융산업을 규제하라고 요구하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라고 주장한다. 은행가들을 나치에 비유하고 사람이 돈보다 먼저라고 외친다.

상징성 큰 월가 시위

이들은 주장을 적은 종이를 펼치거나 구호를 쓴 피켓을 흔들면서 거리 행진을 한다. 그렇지만 시위대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고 시위가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위는 세계 금융의 심장에서, 금융산업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행위다.

장소를 월가로 정한 것만큼이나 이들의 시위 방식도 주목거리다. 이들은 침낭을 가져와 인근 공원에서 밤을 함께 새운다. 돈과 필요한 물품을 서로 나눈다.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털어놓고 자유롭게 토론한다. 공동체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시위가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시위대는 금융산업의 탐욕뿐 아니라 빈부격차, 빈곤, 실업, 환경, 전쟁 그리고 최근 논란 속에 사형된 트로이 데이비스의 죽음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금융권과 정부에 대한 단순 항의가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기성 가치관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들의 시위를 1960년대 히피문화와 연결하려 한다. 나중에 허무주의와 초월주의로 흘렀지만 히피문화의 기본은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자면 2008년 촛불시위와 닮아가고 있다. 촛불시위 역시 단순 시위가 아니라 문화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 시위의 동조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예사로운 현상이 아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막고 있지만 시위는 참가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의 다른 지역으로도 퍼지고 있다. 시위 참가자가 늘고 시위 지역이 확산되는 것은 이들의 주장이 그만큼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자신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사회불평등에 좌절하는 미국인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현실이 미국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저소득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특히 긴축재정에 들어간 그리스 같은 나라의 국민도 말로 하기 힘든 고달픔을 겪고 있다. 외부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그리스는 당장 올해 말까지 공무원 3만명을 정리해고하고 2015년까지 공공부문 노동자 15만명을 줄여야 한다. 그리스 외에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재정긴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없고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시위는 안타깝고 절절하다.

월가 시위 남의 일 아니다

월가와 그리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것은 아니다. 미국, 그리스 그 밖의 다른 나라와 한국의 사정이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좌절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치솟는 등록금과 얻기 힘든 일자리 때문에 낙담하는 젊은이가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들이 희망을 품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못할 때 한국에서도 월가와 같은 시위가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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