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박00을 징역 2년6월, 피고인 한00, 배00을 징역 1년 6월에 각 처한다."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13호 법정.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피고인들의 얼굴은 재판장의 선고와 동시에 일그러졌다. 방청석 역시 선고 형량을 예상치 못한 듯 술렁였다.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고려대 의대생 3명에 대한 이날 선고는 명문 의대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영화 '도가니'의 흥행 돌풍 여파로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어 이날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이었다.
재판부도 예정 시간보다 6분 늦게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고뇌한 흔적이 역력했다. 배준현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기자와 만나 "판결문을 몇 차례나 검토하고 일부 문구를 수정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번 선고 형량은 예상보다 중형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피고인들이 반성하고 계획적으로 범행하지는 않은 점, 다른 범죄전과가 없는 점, 피해회복을 위해 공탁한 점 등 그동안 성폭력 가해자가 실형을 피해간 '단골' 변명도 이번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재판부는 "양형 참작 사유를 고려했지만 실형을 면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영화 '도가니'의 모티프였던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에서 논란이 됐던 양형 기준 논리도 이번엔 명쾌했다. 배 부장판사는 "집단성추행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이고 대법원에서 정한 양형 기준은 2년6월 이상~5년 이하"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도가니' 사건 항소심이 가해자를 집행유예로 석방한 데 대해 쏟아지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재판부가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배 부장판사는 "검찰 구형 자체가 낮았던 것으로 특별히 과한 형량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건이 공론화돼 피해자가 사건 외적으로 겪은 피해의 측면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배 부장판사는 "6년 간 친밀한 관계였던 터라 피해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더욱 심했을 것이고, 특히 피해자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겪는 등 사건 이후 심각한 2차 피해를 겪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판결이 내려지자 김지윤 고려대 문과대학 학생회장(사회학과 4)은 "우리나라는 워낙 성범죄 처벌 수위가 약해 경미한 처벌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환영했다. 고려대 앞에서 1인시위를 했던 시민단체 활동가 김현익(32)씨도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점을 감안하면 형량이 과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이후 뒤늦은 출교 조치 등으로 비난을 받았던 고려대는 침묵했다. 고려대의료원 관계자는 "어차피 출교 처분돼서 이제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지웠다"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서성옥 고려대 의대 학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직을 사퇴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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