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기사회생했다. 메르켈 총리는 29일(현지시간)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안을 통과시키며 침몰 직전의 유로호를 구해내고 자신도 정치적 입지를 회복했다.
이날 표결의 관전 포인트는 증액안 통과 여부와 함께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정이 과연 독자적으로 과반을 확보할 수 있느냐였다. 야당의 도움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연립정부의 분열을 가속화하는 것은 물론 메르켈의 리더십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EFSF 증액안 가결에는 620명 재적의원 가운데 31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연정 소속 의원이 331명인 점을 감안할 때 20명 이상이 이탈하면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행히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한 의원이 15명으로 나타나 메르켈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향후 독일 정국은 결코 메르켈에게 호의적인 쪽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지 언론들은 구제금융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동안 연정 내부에서 갖가지 파열음이 터져 메르켈 총리가 통제권을 급격히 상실했다고 전한다. 시사주간 슈피겔은 "연정의 분열은 이미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이번 표결이 연정의 종말을 재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가 유럽을 구한 대가로 자신은 낙마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표결에서 나온 15표의 반란표가 보여주듯, 메르켈 총리는 당 장악력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내각의 '넘버 2'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과의 미묘한 관계. 신중한 성격의 쇼이블레 장관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메르켈 총리의 구제금융안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여러 차례 피력했다. 핵심 측근이었던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중앙은행) 총재가 노골적으로 그리스 지원을 반대한 것 역시 메르켈 총리의 권위를 깎아 내리는데 일조했다.
연정 파트너와의 갈등도 문제다. 독일 중도우파 연정은 연방의회 총의석 622석 중 195석을 확보한 기민당, 93석의 자유민주당(FDP), 43석의 기독교사회당(CSU)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필립 뢰슬러 자민당 당수(부총리 겸 경제장관)는 유로존 구제금융을 당론으로 반대하며 그리스의 디폴트를 위기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호르스트 제호퍼 기사당 당수도 "유로가 무너지면 유럽이 무너진다"는 메르켈 총리의 주장을 반박했다. 기사당 소속 페터 람자우어 교통장관은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져도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결국 연정 파트너 소속 장관들이 총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메르켈 총리는 내각(기민 8, 자민 5, 기사 3) 안에서도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 자민당, 기사당이 연정에서 이탈한다고 해서 사회민주당(SPDㆍ146석)이나 녹색당(68석) 같은 진보 진영과 대연정을 구성하기도 쉽지 않다.
연정이 깨지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할 수 있고, 연정 구성 과정에서 기민당이 배제되면 메르켈 총리는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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