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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재성 판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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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재성 판결 유감

입력
2011.09.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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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재판정에 섰던 적이 있다. 비록 정식재판 아닌 즉심재판이긴 했지만. 휴가를 다녀온 얼마 뒤에 교통위반 벌금통지서가 날아왔다. 고속도로에서 갓길을 운전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흔했던 카파라치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첨부사진에는 진출로를 불과 2~3m 앞서 빠져나가는 차량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평소 그런 식의 얌체운전 행태에 대해 늘 분개해왔던 터였다. 이건 벌금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명예에 관한 사안이라는 생각에 분연히 이의를 제기했다. 합리적 판단을 통해 훼손된 자존심을 회복하려던 생각은 그러나 너무나 순진했다.

■ "엄청나게 막히는 길에서 숱하게 갓길로 빠져나가는 차들을 보면서도 진출로 점선이 나오길 끈질기게 기다렸다가 핸들을 틀었다"는 호소는 "단 1m라도 먼저 빠져나간 건 사실 아니냐. 1m를 용인하면 10m, 20m, 나아가 몇 백m, 몇 km도 용인하게 된다. 이유 없다"는 기막힌 단순논리로 배척됐다. "무조건 처벌이 목적이냐. 법의 합목적성이란 게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가 "제법 똑똑한 척한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갓 임용된 듯한 새파란 판사에게 당한 수모는 오래도록 상처로 남았다. 결국 이의 제기로 인해 벌금만 추가로 더 물었다.

■ 판사들의 낮은 자질,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권위의식, 삶과 인간에 대한 좁은 이해 등이 자주 문제가 되지만 그래도 기자로서 지키려는 원칙이 있다. 가급적 판결에 대한 비판적 논평은 삼가는 것이다. 사회란 어차피 개인의 이해와 가치관들이 충돌하는 공간인 데다, 더욱이 우리는 이견에 대해 절대로 물러섬 없이 끝장을 보는 문화다. 다소 모자라도 어딘가에 판단의 기준점을 세우지 않으면 무한 혼란을 감당할 수 없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판결이다. 언론마저 판결마다 입장과 이념에 따라 칭송과 비판을 오가는 행태는 그래서 마땅치 않다.

■ 그런데도 '선재성 판결'은 영 개운치 않다. 사실 선 전 판사가 기소되기 전부터 '제 식구'에 대한 유죄판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조짐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10여건이 줄줄이 기각됐을 때부터 뚜렷했다. 뇌물수수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쳐도 무엇보다 명백한 소개ㆍ 알선행위를 조언ㆍ권고행위로 윤색해 변호사법 위반혐의마저 무죄로 판결한 건 너무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재판의 권위는 법관에 대한 존경과 믿음에서 비롯된 국민의 승복을 통해 얻어진다"고 강조한 지 딱 사흘 만의 판결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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