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액 뒤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바람에 고객 집까지 찾아가 통사정하고 뺐죠."(테니스 국가대표 손미애)
"똑똑하고 젊은 행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처자식 떠나 6개월간 여관에서 승진시험 준비했어요."(테니스 국가대표 황정곤)
"농구든 은행이든 숫자놀음 아닙니까, 경기에서 분초를 다투듯 영업하고 돈을 셌습니다."(농구 국가대표 정재섭)
국가대표 은행원도 있다. 반평생 코트를 누비던, 그것도 나름 일가를 이뤘던 운동선수들이 어지간해선 들어가기 힘들다는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은행 소속 선수단 출신이라 입사도 수월한데다 두둑한 연봉에 정년까지 보장되니 금상첨화겠지만, 제아무리 국가대표라도 막상 살아남기는 어렵고 성공하긴 더더욱 힘들다.
황정곤(53) 산업은행 스포츠금융단장은 스포츠 관련 신상품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7월 산업은행이 '스포츠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막중 임무를 맡긴 것이다. 부하 직원으로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을 넷이나 거느리고 있으니 그냥 선수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황 단장은 2000년 선수단 감독을 은퇴하면서 은행 업무를 처음 맡을 때만 해도 지점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노라고 털어놓았다. "상품내용은 어려운데 머리는 굳고 몸은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차차 영업의 묘미를 깨달았다. "운동선수들은 선후배 사이가 깍듯하고 인사성도 밝잖아요. 더구나 웬만해선 'No'라고 하지 않고요. 몸 움직이는 거야 타고났고요. 영업이 딱 적성에 맞더라고요."
그는 지점장을 거쳐 단장에 올랐지만 요즘도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지방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육상 꿈나무 육성을 위한 정기예금 등 스포츠와 금융을 접목한 상품 개발에도 여념이 없다. 역시 테니스 국가대표에서 은행원으로 변신한 설민경(51) 농협 인사부 차장이 그의 부인이고, 프로야구 황재균(롯데자이언츠) 선수가 아들이다.
손미애(43) 신한은행 남대문지점 프리미어 창구팀장은 17년 경력의 테니스 국가대표에서 최근 지점 7곳을 거친 18년 차 대표 은행원이 됐다. 라켓 잡느라 돈을 만져본 적도 없고 오후 4시30분 칼 퇴근하는 곳으로 알았던 은행에서 돈 세는 일부터 배웠다.
"승부욕은 뒤지지 않잖아요. 이 악물고 밤새 공부하고 또 공부했어요." 돈맛(?)을 알게 되고 고객관리에 쏠쏠한 재미가 붙자 실적도 올랐다. 그가 속한 지점은 올 상반기 실적 4위를 기록했는데, 손 팀장의 목표는 3위 안에 들어 상을 받는 것이다.
정재섭(49) 기업은행 본부기업금융센터장은 "가로채기 영업의 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1980년대 후반 명 가드답게 고객을 유치할 때도 다른 은행의 우량 고객을 잘 빼온다는 것이다. 2002년 최연소 지점장을 꿰차더니 2005년엔 '기업은행 최고의 명장' 칭호를 받았다. 그는 "영업전략도 숫자 하나에 승패가 엇갈리는 코트 위 전략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국민은행은 지점장 급 7명이 실업대표를 포함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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