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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계천의 '로스 인디그나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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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계천의 '로스 인디그나도스'

입력
2011.09.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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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 실업자는 4,400만 명으로, 이는 스페인 인구와 같은 규모다. 미국의 실업자 1,400만 명을 모아놓으면 인구 규모로 5번째 주(州)가 된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특집기사에서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전 세계 대규모 실업문제의 심각성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대규모 실업 사태는 선진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로,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에 진입하려는 20대다. 이들 20대는 40주 이상 직업을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중 비중이 가장 높아서 자칫 일생 동안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러낸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든 첫 세대'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21%에 달하는, 이번 경제 위기 최악의 희생국 중 하나다. 수도 마드리드의 도심에 위치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올해 5월 텐트촌이 등장했다. 젊은이들이 저녁마다 모여 정부에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의 방향을 결정하는 '본부'다. 처음 수백명으로 시작된 이 텐트촌에는 한때 밤마다 3만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트위터(@acampadasol)를 통해 전국으로 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 트위터 계정의 팔로워는 7만 명에 달한다. 현지 언론은 이들에게 '로스 인디그나도스'(los Indignadosㆍ 분노한 사람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로스 인디그나도스는 스페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스 인디그나도스는 이미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지역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이제 그 바람은 서쪽으로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을 휩쓸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의 월가에 도달했다. 동쪽으로는 인도를 들썩이게 하고 있으며,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 대륙으로 불어 닥칠 기세다. 이 새로운 세대는 트위터 등 뉴미디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외부에 알린다. 뚜렷한 지도부가 없는 자발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들은 현 민주주의 체제의 기반인 대의정치와 기성 정당체제를 불신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도 로스 인디그나도스가 존재한다. 수치상 청년 실업률은 유럽이나 미국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정규직 일자리와 천문학적 대학 등록금 탓에 거액의 빚을 짊어져야 하는 등 젊은 세대가 지닌 울분의 크기는 외국의 로스 인디그나도스 못지 않다.

올 상반기 '반값 등록금'운동을 계기로 조직화한 이들 중 일부는 '분노하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서며 전 세계 로스 인디그나도스와의 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은 26일부터 29일까지 밤마다 서울 도심 청계광장에 모여 다시 목소리를 냈다.

이달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연말까지 계속되는 총선ㆍ대선 정국을 맞아 한국의 로스 인디그나도스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과연 이들은 자신들을 대변해 줄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표를 몰아줄까 아니면 외국의 로스 인디그나도스처럼 기존 대의정치 체제 자체를 전복하러 나설까. 그 선택은 기성세대가 로스 인디그나도스 현상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정영오 경제부 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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