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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전통 음식 전도사 된 한의사 안상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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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전통 음식 전도사 된 한의사 안상우씨

입력
2011.09.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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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관광공사 주최로 열린 제1회 한일 식문화 교류전. 한국 수라상으로 이름 높은 이종임씨, 일본 양과자 제조 명인 요시다 가쿠지로씨 등 이름만 들어도 100% 수긍이 가는 전문가들이 탁월한 요리 식견을 피력한 자리였다.

하지만 함께 발표자로 참석한 한의사 안상우(50)씨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도대체 어인 일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이날 소개한 요리는 바로 조선 세종이 아침에 먹었다는 타락죽(駝酪粥). 그리고 그의 현재 직함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의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이쯤이면 뭔가 실타래가 풀릴 듯도 하다.

타락죽은 쌀을 곱게 갈아 우유로 쑨 음식이다. 세종은 원래 고기가 없으면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였다 보니 당뇨병에 시달렸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어의 전순의가 영양을 공급하면서도 위장에는 부담이 없는 이 음식을 아침에 먹게 했다. 전순의는 이 기록을 자신이 쓴 진료서 '식료찬요(食寮簒要)'에 남겼는데 나중에 허준이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이를 소개했다.

"동의보감 관련 사업을 하다 보니 타락죽이 머리에 새겨져 있어 소개하게 됐어요. 동의보감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지면서 2~3년 전부터는 이 책에 나오는 요리에 대해서 강의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안씨의 설명이다.

사실 한의학에서는 일찍부터 음식으로 병을 고치고, 나아가 음식으로 병을 예방한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전순의의 처방도 그런 차원이었고, 허준의 동의보감도 같은 맥락이다. "안 좋은 것 먹고, 독성인 약을 마구 섭취하면 몸은 철저히 파괴됩니다. 그래서 삼시 세끼 잘 먹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 조상들은 그런 걸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으니 대단하지 않아요."

안씨와 동의보감을 연결해준 것은 2009년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였다. 한의학연구원 학술정보부장으로 있던 그는 보건복지부가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두 차례 실패한 이후 새로운 추진 주체를 공모하자 연구원을 대표해 응모해 선정됐다.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이 된 그는 2년의 노력을 쏟아부어 마침내 한의학계의 숙원을 풀어 낼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죄다 유럽 사람이어서 한국도 잘 모르고, 한국의학은 도대체 몰랐어요. 그래서 정교한 논리를 개발했는데 그게 먹혔어요." 그가 만든 논리는 '동의보감은 16세기 서구 사회를 압도하는 예방의학과 공중보건을 당시 조선 조정이 펼쳤다는 진귀한 기록이고, 개인위생과 예방의학 지식을 대중화하려는 애민사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기념사업단 차원에서 다른 동의보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허준의 한글본 방역 관련 저작 등을 모은 출간 작업은 현재 70~80% 정도 진행됐고, 동의보감 영역판도 2013년 출간을 목표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동의보감 박물관을 만드는 '사이버 동의보감' 사업은 내년부터 준비에 착수해 내후년 개설할 예정이다.

안씨가 전통 의서에 빠진 것은 원광대 한의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군사정권의 휴교령으로 학사 일정이 중단되면서 우연찮게 서당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가 당시 읽은 한의학 역저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 10년 간 서울과 전주에서 개업 한의사로 일했지만 그의 뇌리에선 선현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94년 한의학연구원 학술정보부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과거 서양 의학의 의료술은 지금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엔 첨단 과학으로 여겨졌듯이, 한국의 전통 의술 역시 첨단 과학으로 받아들여졌지요. 이를 오롯이 담은 전통 의서는 첨단 과학이 녹아든 골수로 취급됐어요. 외국 사신이 찾아올 때 주는 하사품이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도 받고 있었죠. 이런 소중한 자산과 전통이 식민지화와 근대화 이후 사라져 버렸어요. 결국 서양 문화권에서는 한의학(Korean Medicine)이 중국의학(Chinese Medicine)으로 오역되는 사례가 빈번할 정도가 됐죠. 귀하디 귀한 자원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결국 이 일을 하게 된 거죠."

그가 전통 의서 번역과 디지털화에 열정적인 것도 같은 이유다. 한의학연구원 학술정보부장 시절 그는 한의학 서적 현대화 연구 사업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임언국이 저술했다는 것만 알려졌던 외과 의술서 '치종지남(治腫指南)'을 발견하는 쾌거도 거뒀다. 정약용의 의서 '마과회통(麻科會通)'의 번역서도 개인적으로 출간했다.

"한의사를 하는 것보다야 소득이 적어 쪼들리죠. 하지만 인생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성현들의 속삭임을 매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으니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죠."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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