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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 어떻게 보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전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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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 어떻게 보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전화인터뷰

입력
2011.09.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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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재정 위기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금융기관이 파생상품의 개발과 판매에 몰두하고 고수익을 노리다가 부실채권을 떠안으면 정부가 그 손해를 갚아주는 등 금융 부문에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규제 없이 투기에 몰두하는 금융시스템을 바로 잡지 않으면 경제 위기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재정적자에서 비롯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해 장하준(48)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금융시스템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2008년 말 금융위기를 겪고도 금융시스템을 고치지 않아 세계 경제가 또 다시 위험에 처했다면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_그리스 재정위기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단순화하면 그리스 정부가 거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써서 재정 위기가 온 것이다. 경기가 나빠 세수도 줄었고. 그 때문에 그리스 국민이 이만저만한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리스 사태가 그리스 한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로까지 번진 것은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금융기관들이 위험 관리를 하지 않은 채 그리스에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빌린 사람도 문제지만 잘못 빌려준 사람도 문제다. 그런데도 그리스 국민이 모든 부담을 지고 있다."

_그리스의 재정적자는 어느 정도인가.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심각하다. 하지만 유럽국가 전체로 보면 그리 심각하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보면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의 적자는 아주 작은 수준이어서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영국 같은 나라는 흑자를 내기도 했다."

_그리스 사태가 해결될 것 같은가.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이 모른 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의 국민과 일부 정치인이 왜 그리스를 도와야 하냐며 볼멘 소리를 하지만 그렇다고 유로체제를 깰 수는 없을 것이다. 유로체제를 해체하려면 워낙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_유로체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경제적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점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 경제구조와 발전수준이 비슷한 나라로 구성됐더라면 문제가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 사태는, 한국으로 치면 지방의 한 중소 도시가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로존 국가들은 재정통합도 안돼있고 노동이동도 미국만큼 자유롭지 못하니까 해결이 쉽지 않다. 정치통합도 물론 안돼 있다. 미국은 특정 주가 어려움에 빠지면 연방정부가 대거 지원해준다. 그러나 유로존은 그렇지 않다. 회원국의 국민들 사이에 한 나라라는 의식도 부족하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생각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돕는데 정치적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로존이 재정통합이나 국가파산제도 같은 것을 도입하지 못하면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_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은 있는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말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드러난 미국의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주택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주택가격 하락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성자산도 많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도 아니다. 모두 그 당시 지적됐던 문제들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공화당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의 효율성이 떨어져 경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더블딥 가능성이 자꾸 나오는 것이다."

_세계 경제를 위해 중국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중국에 지나친 기대를 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중국은 구원투수가 되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75~80% 정도 된다. 세계경제규모가 57조~58조달러인데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달러를 조금 넘고 국내총생산(GDP)도 5조8,000억달러 정도 된다. 중국이 경제대국인 것은 맞지만 이 정도로는 다른 나라에, 세계 경제에 도움을 줄 수가 없다. 게다가 중국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이 여전히 많고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있다. 자기네 문제가 심각한데 그런 중국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_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긴축을 해야 하나 부양?해야 하나.

"단기적으로는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간부문에 부채가 많고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양책을 써서 돈을 돌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양책은 숨통을 터주는 것일 뿐이다. 그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문제 해결을 등한시하면 세계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

_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앞서 말한 금융시스템의 개혁을 뜻하나.

"그렇다. 기업지배구조와 세수체계 개선, 투자 촉진, 기업 경쟁력 신장 등도 함께 필요하다. 현재 금융은 규제가 다 풀려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아무런 제재가 없으니 마음껏 돈벌이에 나선다. 하지만 돈을 벌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고위험상품에 덤볐다가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문제는 그 손해를 국가가 떠안는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부실을 정부가 대신 지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은 바로 부실 금융권을 돕기 위해 엄청난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경기 부진으로 세금이 적게 들어온 것도 중요한 이유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부의 방만한 운영 때문에 재정위기가 왔다고 호도한다."

_금융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하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한 뒤 1980년대 남미에서 외채 위기가 있었고 1990년대에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한국 등 아시아가 위기를 맞았다. 2008년 말에는 미국, 유럽 등이 금융위기를 겪었다. 최근 30년 동안 금융위기가 반복된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재정위기를 겪는 나라들이 돈을 펑펑 써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공적자금 투입과 세수 감소가 핵심적인 이유다. 그런데도 시장주의자들은 정부가 복지지출 등에 과도하게 지출한 게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 사태와 세계 경제 문제를 시장주의적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원인을 제대로 찾기 어렵고 해법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_한국도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어떤가.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 가장 먼저 고꾸라지고 가장 먼저 회복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이 특별히 못해서 혹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다. 금융개방이 그만큼 많이 됐기 때문에 변동폭이 유난히 큰 것이다. 금융개방 수위가 워낙 높아 외국 금융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점에서 급속한 외부 충격이 또 온다면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 약력

1963년 서울 출생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7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1992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1990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

● 주요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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